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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편견의 벽 너머로 날아오른 발레 댄서

입력
2023.09.04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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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비백인 발레리노, 조하르 모사발(Johaar Mosaval, 1928.1.8 ~ 2023.8.16)

조하르 모사발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 출신 흑인 발레리노로 영국 로열발레댠에 입단해 수석무용수 등으로 만 25년간 활약했다.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는 무슬림 공동체의 춤에 대한 편견과 조국의 그악한 인종차별, 발레 장르 특유의 피부색에 대한 불이익을 극복해야 했다. 세계 무대에서는 일류 댄서로 대접받던 그였지만 고국 무대에는 서지 못했고, 은퇴 후에야 "백인 댄서와 손이 닿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공연을 허락받았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Petrouchka)' 주연으로 열연한 76년 당시의 모사발. archive image courtesy of Johaar Mosaval, dailymaverick.co.za

조하르 모사발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 출신 흑인 발레리노로 영국 로열발레댠에 입단해 수석무용수 등으로 만 25년간 활약했다.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는 무슬림 공동체의 춤에 대한 편견과 조국의 그악한 인종차별, 발레 장르 특유의 피부색에 대한 불이익을 극복해야 했다. 세계 무대에서는 일류 댄서로 대접받던 그였지만 고국 무대에는 서지 못했고, 은퇴 후에야 "백인 댄서와 손이 닿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공연을 허락받았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Petrouchka)' 주연으로 열연한 76년 당시의 모사발. archive image courtesy of Johaar Mosaval, dailymaverick.co.za

1953년 6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축하공연이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열렸다. 수상 처칠과 미국의 해리 트루먼, 프랑스 샤를 드골 등 전세계 국가원수급 하객 8,000여 명이 객석을 메운 세기의 공연.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오페라 발레 ‘글로리아나(Gloriana)’가 초연된 그 무대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초이자 당시로선 유일했던 남아공 출신 비백인 솔리스트 조하르 모사발(Johaar Mosaval)이 섰다. 그가 춤을 춘 시간은 약 3분. 하지만 그 순백의 무대에서 그의 존재감은 주역 못지않게 돋보였다. 아마도 난생 처음 비백인의 발레를 보았을 젊은 여왕은 막간에 이례적으로 그를 초대해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거기엔 영연방국가 남아공 수반이던 총리(D.F. Malan)도 있었다. 1910년 공화국 출범 이래 이어오던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관행을 50년 법으로 공식화한 주역 중 한 명이었다. 훗날 모사발은 “마치 구름 위를 나는 기분(floating on cloud nine)이었다”고 그날을 회고했다.
동남아시아계 비백인 노예 출신 집안에서 태어나 인종차별과 종교의 편견을 딛고 세계적 명문인 로열발레단의 최초 비백인 무용수로 발탁돼 만 25년간 수석(Principal)과 시니어수석 무용수 등으로 활약한 남아공 발레의 전설 조하르 모사발이 8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영국이 호주를 유배지로 삼았던 것처럼, 17세기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 식민지 저항세력들을 동인도회사를 통해 남아공으로, 현지 백인(보어인)들의 노예로 강제이주시켰다. 모사발은 그렇게 남아공에 이식된 말레이계 무슬림 후손이었다.
그는 1928년 1월 8일, 수도 케이프타운의 동남아계 정착촌 말레이 지구의 ‘디스트릭트 식스(District Six, 이하 6구)’란 동네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무슬림이던 부모는 각각 막노동과 삯바느질로 10남매를 부양했다. 모사발은 집안의 장남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다종교가 공존하지만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이고, 그 뿌리는 수니파 원리주의 교파 중 하나인 살리프파에 닿아 있다. 타 종교문화집단에 이식된 소수가 고유 문화를 더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예는 흔하다. 장남이 10대 무렵 발레를 시작하자 부모를 비롯해 마을 종교지도자들까지 나서 그를 말린 데는, 가난한 흑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못지않게 종교적인 이유가 컸다.
무슬림은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춤을 경계한다. 쿠란(Quran)에는 춤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지만 그들이 일상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하디스(Hadith)’ 즉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과 행적을 모은 경전에는 무함마드와 그의 아내(Aisha)가 아비시니언 기독교인들이 추는 ‘정숙한(modest)’ 춤을 이의 없이 지켜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춤에 대한 입장 차이는 ‘정숙’이란 말의 해석에서 주로 비롯된다. 극단적인 원리주의자들은 알라를 위한 경배의 춤과 남편을 위한 아내의 춤을 제외한 모든 춤을 정숙하지 않은 ‘하람(haram, 금지행위)’으로 규정한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남녀가 섞여 춤을 췄다는 이유로 17명을 공개 참수한 일, 2014년 미국 댄스경연대회(You Can Dance) 레바논 대회에서 우승한 시리아 출신 팔레스타인 난민 아마드 주데가 목 뒤에 ‘춤 아니면 죽음을(Dance or Die)’이란 산스크리트어 문구를 문신으로 새긴 채 2017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광장에서 춤을 춘 배경이 그거였다.
반면에 온건한 율법학자들은 쿠란이 규정한 ‘은밀한 부위(Awrah)’만 드러내지 않으면 남녀가 섞여서도 춤출 수 있다고 해석한다. 남자의 ‘아우라’는 주로 배꼽에서 무릎 사이이고, 여성의 경우엔 대체로 남자보다 넓어 심한 경우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리키기도 한다. 무슬림에게 춤은, 특히 부부가 아닌 남녀가 함께 추는 춤은 성적 유혹과 타락의 가능성을 내포한 행위다.

지난 3월, 남아공 출신 안무가들이 공동 연출하고 다수의 발레단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한 모사발 헌정공연 'Dreaming Dance in District Six-The Johaar Mosaval Story' 포스터. ArtscapeTheatre

지난 3월, 남아공 출신 안무가들이 공동 연출하고 다수의 발레단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한 모사발 헌정공연 'Dreaming Dance in District Six-The Johaar Mosaval Story' 포스터. ArtscapeTheatre

어려서부터 체조와 수영 등 몸 쓰는 일에 능했던 모사발은 10대 무렵 이미 학교 ‘스타’였다. 교내 행사 때면 늘 무언극 배우나 댄서로 무대 중심에 서곤 했다고 한다. 무언극 연출자였던 한 교사(Rose Ulrich)가 그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친구인 ‘남아공 발레의 대모’ 덜시 하우스(Dulcie Howes, 1908~1993)에게 소개했다. 케이프타운발레학교(UCT) 단장이던 하우스는 모사발의 춤을 보자마자 UCT에 입학하라고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가능했던, 기적같은 특전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피부색을 지닌 아이들과 학교나 동네에서 춤추는 것과 전문발레댄서를 양성하는 대학기관에서 백인들과 함께 교육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나는 무슬림이고 당시 무슬림이 무용수로 훈련을 받는다는 건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6구의 흑인 소년이었다.” 커피에 아무리 우유를 부어도 그건 그대로 커피라던 한 남아공 출신 작가의 말처럼, 그는 흑인과 다를 바 없는 유색인종이었고 스스로도 늘 “비유럽계 흑인 댄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전원 백인인 UCT 재학생들은 그를 철저히 무시하고 따돌렸다. “시선부터 끔찍했어요. 그들과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고, 나는 늘 무리의 맨 뒤에 서있어야 했어요.” 그는 자신이 얻은 기회가 축복인 동시에 저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1948년 집권한 국민당 정부는 인구집단을 혈통과 피부색으로 구분한 ‘인구등록법(50년)’과 인종별 거주지역 분리를 규정한 ‘집단지구법(50년)’에 이어 6구를 비롯한 도심 비백인 거주지 주민들을 도시 외곽으로 강제이주케 한 ‘반투자치법(59년)' 등을 잇달아 제정했다.

1950년대 로열발레단 입단 직후 고향인 케이프타운 6구를 찾은 모사발과 마을 아이들. 마을은 50년대 집단지구법으로 모조리 헐려 백인전용주거지역으로 바뀌었다. sahistory.org.za

1950년대 로열발레단 입단 직후 고향인 케이프타운 6구를 찾은 모사발과 마을 아이들. 마을은 50년대 집단지구법으로 모조리 헐려 백인전용주거지역으로 바뀌었다. sahistory.org.za

인구등록법이 시행된 50년 그해, 영국의 저명 안무가 겸 발레리나 앤턴 돌린(Anton Dolin)과 앨리샤 마르코바(Alicia Markova)가 신예 댄서 발굴차 남아공을 방문했다. 개관 이래 단 한 번도, 청소부가 아닌 한 비백인이 선 적이 없던 ‘알함브라 극장’ 무대에 모사발이,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밀수품처럼(smuggled)’ 올라섰다. 접수도 안 될 게 뻔해서 오디션 참가 신청서를 사전에 내지 않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는 그 오디션으로 로열발레단 전신인 ‘새들러스웰스발레단(Sadler’s Wells Ballet)’ 부설 발레학교 입학 자격을 얻었다.
가족 친지는 당연히 반대했다. 그는 마을 모스크 지도자들 앞에서 발레 시연까지 하면서 허락을 구했고, ‘종교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어렵사리 지도자들의 허락을 얻었다. 케이프타운 바깥 나들이조차 해본 적 없던 그는 지역 진보무슬림단체가 마련해준 돈으로 런던행 항공권을 구입해 이듬해 1월 남아공을 떠났다. 그리고 만 3년 과정의 발레학교를 단 18개월 만에 졸업하고, 52년 새들러스웰스발레단 최초 비백인 정식 단원이 됐다. 그는 새들러스웰스가 로열발레단으로 거듭난 56년 솔리스트로, 60년 수석무용수로, 65년 시니어 수석으로 잇달아 승급하며 74년 만 46세로 은퇴할 때까지 25년간 로열발레단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발레리나들이 입는 흰색 ‘튀튀(tutu)’ 의상에서 유래했다는 ‘발레 블랑(Ballet Blanc)’이란 말은 클래식-낭만 발레를 환유하며 발레 미학을 상징하는 말로 지금도 더러 쓰이는 용어다. 프랑스어로 ‘순백의 발레’란 뜻을 지닌 저 말은 발레 미학 전통과 별개로 비유럽계- 비백인 무용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자 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1982~)가 미국 3대 클래식 발레단 최초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첫 흑인 수석무용수가 된 게 불과 8년 전(2015)이었다. 비백인 무용수들은 여전히 화장으로 피부색을 밝게 만들라는 주문을 받거나,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곧게 펴라는 지시를 받곤 한다. 아시아-아프리카계 무용수의 피부색에 맞춘 색상의 포인트 슈즈가 출시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그 전까지 비백인 댄서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신발에도 ‘화장’을 해야 했다.
발레는 중세 유럽 귀족사회의 위계 전통을 충실히 고수하는 보수적인 예술이다. 고전 발레 주인공들은 대개가 공주와 왕자이고, 그 배역을 맡는 주역들은 현실 즉 발레단 내에서,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우월적 계급 지위를 누리기도 한다. 수석무용수 승급 행사를 국왕 대관식처럼 치르는 발레단도 있다고 한다.

"전성기의 내 춤을 남아공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 슬프다."

조하르 모사발, 2018년 'Daily Maverick' 인터뷰에서

발레리노 모사발이 넘어야 했던 벽들이 대충 그러했다. 그는 피부색 때문에, 또 유달리 작은 키 때문에 ‘백조의 호수’의 왕자 지그프리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당대 일류 무용수들- 루돌프 누레예프, 마고 폰테인, 일레인 핀필드, 린 시무어, 도린 웰스 등-과 한 무대에서, 수많은 작품의 돋보이는 주연급 배역을 두루 섭렵했다. 체조로 단련된 탁월한 도약력과 특유의 우아함으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랑새(bluebird)로서 파드되(Pas de deux, 2인무)의 한 전범을 구현했고, 길버트와 설리번의 작품 ‘파인애플 폴(Pineapple Poll)’의 선장 재스퍼(Jasper), 프레더릭 애쉬턴의 발레 ‘더 드림(The Dream)’의 장난꾸러기 ‘퍽(Puck)’의 춤 등을 추었다. 70년 한 영국 매체는 ‘더 드림’ 리뷰 기사에서 “판신(faun-like)과도 같은 그의 야성적이고 익살스러운 연기와 강력한 도약력은 코벤트가든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기량이었다”고 극찬했다. 로열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마거릿 바르비에리(Margaret Barbieri)는 “백조의 호수 3막 타란텔라 선율에 맞춰 펼친 그의 화려하고도 신들린 듯한 춤에 공연장이 뒤집어지곤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흉내내기조차 힘든 연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76년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랑새 역을 끝으로 발레단에서 은퇴하고 귀국했다.

2019년 4월, 남아공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로부터 문화예술계 최고 훈장인 '이카망가 골드메달'을 받는 조하르 모사발. GovernmentZA/ Flickr

2019년 4월, 남아공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로부터 문화예술계 최고 훈장인 '이카망가 골드메달'을 받는 조하르 모사발. GovernmentZA/ Flickr

남아공 유색인종관리국은 비백인 최초 로열발레아카데미 전문교육자 자격증 보유자이자 윈스턴 처칠 어워드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실버주빌리 메달(1977) 수상자인 그에게 국립 발레학교 감독관 직을 맡겼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는 1년여 만에 사표를 냈다.
60년대 로열발레단 순회공연 때도 남아공 정부의 불허로 고국 무대에는 서지 못한 그였다. 그는 귀국하던 해 케이프타운 발레단(Cape Performing Arts Board Ballet Company)의 ‘페트루슈카’ 무대 주인공으로서, 은퇴 후에야 비로소 고국 무대에 섰다. 케이프타운 ‘니코 말란 오페라하우스’ 역사상 처음 무대에 오른 흑인 무용수인 그에게, 당국은 ‘백인 무용수와 맨손이 닿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77년 자신의 발레학교를 열었지만, 그 역시 다인종 공동수업 등 인종분리 정책을 위반한 혐의로 금세 문을 닫아야 했다.

그가 귀국하던 무렵엔 유년의 고향인 6구는 흔적조차 없었다. 또래들과 어울려 춤추던 거리도, 비백인 소수민족 공존과 화합의 상징적 공간으로 다큐멘터리 등에 소개된 6구의 ‘일곱 계단(Seven Steps of District Six)’도 집단지구법에 따른 재개발 광풍에 허물어진 뒤였다. 그가 발레단에 입단하던 52년, 그의 가족도 오늘날 ‘케이프 플랫(Cape Flats)’이라 불리는 교외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모사발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당국의 감시 속에서 다양한 인종 청소년을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쳤다. 9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남아공 정부는 문화 예술 체육계 최고 영예인 ‘이카망가 골드 훈장(The Order of Ikhamanga in Gold, 2019)’ 등 다수의 상과 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와 다큐멘터리 등이 만들어졌고, 케이프타운대는 연극무용공연연구센터(CTDPS)가 주관하는 ‘조하르 모사발 무용공연상’을 제정했다. 웨스트케이프 주 문화체육부장관 앙루 마레(Anroux Marais)는 “그는 우리의 암울했던 역사에 대한 승리의 서사”이자 “조국의 전설”이라고 기렸다.
모사발은 2018년 인터뷰에서도 “남아공 사람들에게 전성기의 내 춤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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