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남북 갈등, 남산 돈가스... 우려 컸던 '2년 지각' 방송의 반전

알림

남북 갈등, 남산 돈가스... 우려 컸던 '2년 지각' 방송의 반전

입력
2023.08.29 04:30
22면
0 0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서 1주일째 1위... '무빙' 해외서도 인기
안기부 옆 '남산 돈가스'까지 입소문
"협력하여 선 이룬다"... '목사 아들' 강풀 작가의 실험

드라마 '무빙'에서 폭탄이 설치된 비행기 테러를 막지 못한 김두식(조인성)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서 폭탄이 설치된 비행기 테러를 막지 못한 김두식(조인성)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서 남파작전을 논의 중인 북한 조직원들의 모습.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서 남파작전을 논의 중인 북한 조직원들의 모습.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선 '번개맨'(차태현)도 초능력자로 나온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선 '번개맨'(차태현)도 초능력자로 나온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요즘 K콘텐츠 시장에서 화제인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엔 한국적 요소가 곳곳에 배어 있다. 초능력자들이 남북 대결을 벌이고 안기부(현 국정원)에 속한 초능력을 지닌 요원들은 1987년 벌어진 '칼기 폭파사건'과 노태우 정권이 1990년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 1994년 북한 김일성의 사망 등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숨 가쁘게 임무를 수행한다.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강풀(49· 본명 강도영) 작가는 "우리나라에 영웅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이유와 상황에서 싸울까란 생각을 했다"며 "분단의 역사 등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접목하고 개인의 삶을 근현대사에 녹여 한국형 영웅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무빙'의 동명 원작 웹툰(2015년 공개)과 달리 드라마엔 전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번개맨'(차태현)이 초능력자로 등장한다. 강풀 작가는 "원작에선 봉석(이정하)이 동경하는 영웅이 '슈퍼맨'으로 나오지만 내 딸을 비롯해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EBS '번개맨'으로 바꿔" 한국형 영웅을 새로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초능력 요원들은 구룡포, 나주 진천, 봉평 등을 암호명으로 쓴다.

드라마 '무빙'에서 교복을 입은 봉석(이정하)은 지각을 해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생각에 마음이 갑자기 들떠 붕붕 떠다닌다.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서 교복을 입은 봉석(이정하)은 지각을 해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생각에 마음이 갑자기 들떠 붕붕 떠다닌다.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다. 디즈니플러스 영상 캡처


드라마 '무빙'에서 안기부 요원인 김두식(조인성)과 이미현(한효주)이 남산 돈가스 가게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 디즈니플러스 제공

드라마 '무빙'에서 안기부 요원인 김두식(조인성)과 이미현(한효주)이 남산 돈가스 가게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 디즈니플러스 제공


공개 미뤄지며 '디즈니 무덤' 될 뻔했는데

이렇게 '한국 냄새' 풀풀 나는 '무빙'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다. 드라마는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디즈니플러스에서 일주일째 1위(27일 기준·플릭스패트롤)를 달리고 있다. 촬영을 마친 뒤에도 2년여의 컴퓨터그래픽(CG) 후반 작업으로 공개가 늦어지면서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드라마의 흥행 반전이다. 사용자 1,327명이 참여한 해외 콘텐츠 리뷰 사이트 IMDB에서 '무빙'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8.5점을 기록했고, 또 다른 유명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관객 지수는 100%로 호평이 주를 이뤘다. "'해리포터'와 '인크레더블', '엑스맨' 시리즈의 특징이 결합"됐다는 반응이다. 등장인물이 하늘을 날고 벽을 맨손으로 부수는 초능력 소재를 청소년 학원물(1~7화)과 성인 로맨스(8~9화), 범죄 누아르(10~11화) 등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장르적 연출로 시리즈의 다양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해외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 돈가스가 먹고 싶어진다"고도 했다. 한국의 초능력자 부모와 자녀들의 로맨스가 모두 '남산 돈가스 가게'에서 꽃피는 점을 눈여겨본 것이다. 강 작가는 "안기부가 예전에 남산에 있었잖나"라며 "안기부 요원들의 이야기를 확장하면서 안기부 인근 '남산 돈가스 가게'를 공간적 소재로 썼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무빙'의 각본과 동명 원작 웹툰을 쓴 강풀 작가.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원작보다 드라마가 낫다고 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디즈니플러스는 2021년 한국에서 론칭한 뒤 그간 투자 대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업계에선 국내 철수설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빙'은 단숨에 디즈니플러스의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강풀 작가는 "창작자로서 OTT에서 1.5~2배속으로 콘텐츠가 재생되는 게 싫었다"며 "서사를 쌓아야 해 느리게 가는 것도 필요한데 그런 소비문화를 보면서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이구나'란 생각도 했지만 배속 서비스가 안 되는 디즈니플러스를 일부러 택한 측면도 있다"도 말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드라마 '무빙'의 각본과 동명 원작 웹툰을 쓴 강풀 작가.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원작보다 드라마가 낫다고 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디즈니플러스는 2021년 한국에서 론칭한 뒤 그간 투자 대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업계에선 국내 철수설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빙'은 단숨에 디즈니플러스의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강풀 작가는 "창작자로서 OTT에서 1.5~2배속으로 콘텐츠가 재생되는 게 싫었다"며 "서사를 쌓아야 해 느리게 가는 것도 필요한데 그런 소비문화를 보면서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이구나'란 생각도 했지만 배속 서비스가 안 되는 디즈니플러스를 일부러 택한 측면도 있다"도 말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강풀이 '강동구'에 집착하는 이유

초능력자들의 '흙내 나는' 소시민 서사도 '무빙' 인기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다쳐도 바로 회복되는 장주원(류승룡)은 자해 교통사고를 내 생계를 꾸린다. 밤이 되면 골목에 숨어 있다 달려오는 차에 갑자기 뛰어들어 사고를 낸 뒤 운전자에게 치료비를 받아 여관비를 내고 끼니를 해결한다. "가진 건 몸뚱아리 하나 그 유일한 자산으로 어떻게든 몸을 굴려 먹고살아야 하는 육체노동자와 '무빙' 속 초능력자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요원들도 초능력을 축복은커녕 재난처럼 여긴다. "조금만 튀어도 유독 눈치 봐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초능력은 애물단지"(소설가 박진규)일 뿐이다. '무빙'에선 그렇게 짠내 나게 삶을 힘들게 버텨온 부모와 자식 세대의 초능력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적에 맞선다. 착한 소시민의 연대를 통한 위기 극복은 강풀 작가가 20여 년 동안 지켜오고 있는 창작의 화두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을 좋아한다"며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지론을 들려줬다.

공감의 힘을 믿는 작가는 판타지도 땅(현실)에 발을 붙이고 쓴다. '순정 만화' 등 그의 모든 작품 배경은 서울의 강동구다. 세 살 때부터 강동구에 산 그는 4년 동안 이곳에서 신문 배달을 해 동네 골목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있다. '무빙' 속 정원고도 강동구 암사동의 한 고교를 배경으로 썼다. '무빙'에 출연한 류승범, 조인성도 모두 '동네 인맥'이다. 강풀 작가는 "이야기가 막힐 때 반드시 현장에 간다"며 "그 공간에 가면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풀리고 그렇게 현장에 가는 게 중요해 내가 사는 강동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양승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