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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듯 박격포로 난민 학살 의혹..."동료 성폭행하라" 인권 유린한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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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듯 박격포로 난민 학살 의혹..."동료 성폭행하라" 인권 유린한 사우디

입력
2023.08.21 21: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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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W "1년간 아프리카 이주민 655명 살해"
게임하듯...비무장 이주민 쏴 죽인 국경경비대
'적대관계' 사우디-예멘 접경지서 비극 발생

지난해 12월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영상 속에서 약 40명의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민들이 난민 캠프를 떠나 사우디 국경지대의 가파른 길을 걷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12월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영상 속에서 약 40명의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민들이 난민 캠프를 떠나 사우디 국경지대의 가파른 길을 걷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경비대가 최근 15개월간 아프리카 이주자 수백~수천 명을 학살하고 생존자들의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했다는 인권단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21일(현지시간)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사우디 외딴 국경 지역에서 지난 15개월 동안 어린이를 포함한 최소 655명이 살해됐다”고 폭로했다. 이 보고서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자들의 증언과 전문가들의 검증, 위성사진 등을 종합해 작성됐다.

이주자들은 내전과 가난을 피해 사우디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난민 브로커를 믿고 고국을 떠났다.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서 아덴만을 건넌 뒤 예멘을 가로질러 사우디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을 접한 사우디와 예멘의 악연이 이주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2014년 예멘 후티 반군의 쿠데타로 내전이 시작됐고, 이듬해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 연합군이 개입하며 양국 관계가 틀어졌다. 올해 들어 사우디가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과 국교를 재수립하며 갈등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국경 상황은 여전히 험악하다.

망명을 위해 고국을 떠나는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의 주요 이동 경로. 이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국가 지부티에서 출발, 아덴만을 건넌 뒤,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까지 예멘 본토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망명을 위해 고국을 떠나는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의 주요 이동 경로. 이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국가 지부티에서 출발, 아덴만을 건넌 뒤,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까지 예멘 본토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HRW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 국경 경비대는 여성과 아동이 다수 포함된 비무장 상태의 이주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발포했다. 박격포까지 동원해 수십 명을 단번에 학살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이주자 200여 명과 함께 국경에 접근했던 한 생존자는 “갑자기 폭발물이 날아왔고, 일행 대부분의 몸이 으깬 토마토처럼 갈가리 찢어졌다”고 말했다.

이주자들을 구금한 채 각종 학대 행위도 했다. 이주자에게 총을 맞을 신체 부위를 스스로 고르게 한 뒤 총을 쏘기도 했다. 남성 이주민에게 여성 일행을 성폭행하라며 성적 학대도 일삼았다. 한 17세 소년은 “한 명이 거부하자 경비대는 그를 즉시 처형했고 곧바로 다른 남성에게 ‘네가 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추방 명령을 받아 예멘으로 압송되던 이주자들도 공격당했다. 20대 여성 생존자는 “(사우디 국경 수비대가) 우리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1㎞ 정도 달아나 쉬고 있는데 박격포를 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수비대가 발포한 폭발무기에 얼굴을 크게 다친 한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수비대가 발포한 폭발무기에 얼굴을 크게 다친 한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살해된 이주자는 최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나디아 하드먼 HRW 연구원은 “증언자들은 산비탈 전체에 시신이 흩어진 ‘킬링필드’로 당시를 묘사했다”며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프로 골프 리그와 축구 클럽을 사들이는 데 수십억 달러를 쓰면서 이런 끔찍한 범죄엔 관심을 쏟지 않아서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번 폭로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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