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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특별치안활동' 비웃듯... 신림동 성폭행범, CCTV 없는 사각지대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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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특별치안활동' 비웃듯... 신림동 성폭행범, CCTV 없는 사각지대 노렸다

입력
2023.08.18 19:55
수정
2023.08.18 20: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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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 미리 준비, 철저한 범행 계획
흉기난동 신림역과 불과 2㎞ 거리
거점 경계 집중한 경찰 대응 한계

17일 30대 남성이 일면식 없는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범행 현장. 이서현 기자

17일 30대 남성이 일면식 없는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범행 현장. 이서현 기자

서울 신림동 한 공원 둘레길에서 대낮에 30대 남성이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장소는 한 달 전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터진 곳에서 불과 2㎞ 떨어져 있었다. 그간 경찰이 주야로 매일 신림동 일대를 철통 경계했지만, 지근거리의 치안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강력범죄는 결국 막지 못한 셈이다.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경찰의 대응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① 이상징후, 우울증 진료뿐... '계획범죄' 뚜렷

1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체포된 범인 최모(30)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부모와 거주해 왔다. “등산로를 걷다가 발견했다”는 최씨 진술에 비춰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고, 범행 당시 술을 마셨거나 약물을 투약하는 등 심신미약 상태 역시 아니었다. 과거 우울증을 호소해 진료를 받은 정도가 이상징후를 엿볼 수 있는 전부다.

이런 진술 내용과 정황을 보면 ‘계획범죄’ 가능성이 뚜렷하다. 준비 과정도 최씨가 의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대상을 물색했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결정적 단서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두 점의 금속 재질 ‘너클’이다. 실제 그는 경찰에 “강간할 목적으로 4월 인터넷에서 너클을 구매했다”고 자백했다. 손쉬운 범행을 위해 너클을 양손에 착용하고 피해자를 마구 때린 것이다.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 여성은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강간상해 혐의로 최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② 장소·시간 전부 감시망에서 벗어나

서울 신림동 인근 경찰 특별치안활동 강화 구역. 그래픽=김문중 기자

서울 신림동 인근 경찰 특별치안활동 강화 구역. 그래픽=김문중 기자

최씨는 철저히 사각지대를 노렸다. 사건 현장은 물론, 공원 안에도 폐쇄회로(CC)TV는 거의 없었다. 그는 경찰에 “범행 장소와 집이 가까워 운동하려고 자주 방문했다”고 말해 이미 CCTV의 부재를 꿰뚫고 있었다.

실제 행정안전부의 ‘생활안전지도’를 보면, 사건 발생 장소는 CCTV와 가로등, 방범등, 편의점 등 치안안전시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이다. 공원 면적은 8만7,892.7㎡로 2만6,000평이 훌쩍 넘지만, 내부에 설치된 CCTV는 7대가 고작이었다. 범행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산불방지용 카메라는 성인 남성 걸음으로 3, 4분을 걸어야 나온다.

대낮을 범행 시간으로 점찍은 것도 범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최씨는 전날 오전 9시 55분 서울 금천구 독산동 소재 주거지에서 도보로 이동해 오전 11시 1분 공원 둘레길에 도착했다. 범행은 오전 11시 40분쯤 이뤄졌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드문 시간이다. 신림동 주민 김모(84)씨는 “요즘엔 날이 더워 새벽 시간대나 오후 늦게야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면서 “낮 12시 전후로는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다중밀집지역 '올인'한 경찰의 오판

4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과 전술 장갑차가 경계를 서고 있다. 뉴시스

4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과 전술 장갑차가 경계를 서고 있다. 뉴시스

물론 아무리 범죄 시나리오가 치밀했다 하더라도 경찰 대응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지난달 조선(33)이 흉기난동 사건을 벌인 신림역 인근에서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당연히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지역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달 4일부터 시행된 경찰 특별치안활동에서도 현장 반경 3㎞ 내 최소 6곳의 순찰이 강화됐다.

경찰이 묻지마 범죄 타깃인 불특정 다수, 즉 다중밀집지역 경계에 골몰하느라 정작 인적이 드문 취약지대 방어엔 힘을 쓰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넓은 지역을 훑으려면 살인예고 글이 지목한 장소 위주로 치안활동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해당 공원은 최근 1년간 범죄가 발생한 적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치안 강화책에 구멍이 뚫린 만큼, 거점 방어에 치중하는 현행 대응 체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순찰만 많이 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은 잘못된 통념”이라며 “경찰의 총력 대응에도 범인이 범행을 단념하기는커녕, CCTV가 없는 곳을 노린 것만 봐도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분석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서현정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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