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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가 사라졌다"...폭염·고물가에 '늦캉스'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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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가 사라졌다"...폭염·고물가에 '늦캉스' 붐

입력
2023.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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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7명 "여름휴가 계획 없다"
장마 이어 폭염·태풍에 휴가 망쳐
휴양 물가 17.2%↑...베케플레이션
징검다리 연휴 '9말 10초' 해외로

한낮 기온이 35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진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한낮 기온이 35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진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 올해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나려던 직장인 안모(30)씨는 지난달 항공권을 알아보다가 마음을 접어야 했다. 성수기인 이른바 '7말 8초(7월 말에서 8월 초)'에 떠나려면 왕복 항공권만 약 30만 원이 들어서다. 작년 여름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 안씨는 "혼자 제주도 가는데 100만 원도 더 들 것 같다"며 "차라리 연말에 해외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여름휴가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태풍에 일본행 취소" "폭염에 휴가 안 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억눌렸던 해외여행 빗장이 풀린 이후 첫 성수기인 올여름 '휴포족(휴가 포기족)'이 속출하고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피엠아이'가 지난달 초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름휴가 계획이 있다"고 답한 이는 고작 27%에 불과했다. 반면 "계획이 없다"(36.8%) "아직 정하지 않았다"(36.2%)고 답한 이들은 73%에 달했다. 휴가계획을 세웠다가 직전에 취소한 이들도 적지 않다.

올해 유독 폭염과 폭우, 태풍 등 변덕스러운 날씨 영향이 컸다. 7월 말부터 장마가 시작됐고, 이어 태풍 '카눈'이 북상했다. 태풍이 지난 후인 이달 초부터 한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회초년생 임모(26)씨는 "입사 뒤 첫 여름휴가라 기대가 컸는데 역대급 폭염에 여행 갈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면서 "연차는 아껴두고 주말을 틈타 강릉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정현욱(42)씨도 "전국 어딜 가든 덥고 사람만 많을 것 같아서 여름휴가를 미뤘다"며 "날이 선선해지면 편안하게 휴가를 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10세 아이의 방학에 맞춰 제주 여행을 준비하던 워킹맘 정모(40)씨는 "바다 보러 제주에 가려고 했는데 폭우에 태풍까지 겹쳤고, 너무 더워서 여행을 취소했다"며 "아이 방학이 아쉽지만 가서 고생하느니, 다음을 기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달 초 태풍 북상으로 "예약한 일본 오키나와행 비행기가 태풍으로 결항돼 왕복 항공료 80만 원을 손해봤다"고 한탄하는 글도 올라왔다.

"1박에 50만 원" "갈치조림 8만 원"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이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이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고물가도 '7말 8초' 휴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성수기 항공료와 숙박료 등이 큰 폭으로 뛰는 '베케플레이션(Vacation+Inflation·휴가비 인상)'으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휴양시설 이용료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2%, 호텔 숙박료는 6.9% 올랐다. 이 밖에 외식 물가 5.9%, 놀이시설 이용료 5.7% 등도 대폭 뛰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4인 가족 2박 3일 국내 여행에 150만 원 가까이 들었다" "친구 셋과 경기도 가평 풀빌라 가려고 했더니 숙박비만 1박에 50만 원이 넘어서 그냥 포기했다" "4박 5일 휴가 가려고 보니 숙박비만 200만 원, 비수기 때 10만 원대인 호텔은 40만 원. 휴가 가기 겁난다" 등 휴양지 고물가를 호소하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실제 제주와 강원 등 국내 대표 휴양지 숙소 가격은 1박당 5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인원 수가 늘어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해 가격은 더 높이 뛴다.

숙박비뿐 아니라 외식비 등 부대비용도 고공행진이다. 강원 유명 휴양지 인근의 한 음식점은 수육 한 접시(소)가 1만5,000원에서 최근 2만 원으로 올랐다. 제주 한 유명 음식점은 갈치조림 가격을 지난해 7만 원에서 올해 8만 원으로 인상했다. 제주 유명 음식인 흑돼지고기도 1인분에 3만 원 안팎으로 판매된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여행지를 바꾼 주부 김경아(35)씨는 "제주도가 숙박이나 항공은 해외보다 저렴하지만 외식비나 체험비 등을 생각하면 돈을 좀 더 내고 일본을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전했다. 제주나 강원에서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등 해양 스포츠 체험 비용도 13만~19만 원에 달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6월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올해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한 응답자(561명) 중 61.9%(347명)는 "휴가를 갈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9말 10초'...늦캉스 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홈캉스'를 보내는 이들이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홈캉스'를 보내는 이들이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폭염과 고물가에 '홈캉스'도 다시 인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차라리 어디 놀러 갈 돈으로 집에서 에어컨 틀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게 진정한 휴가 아니냐" "더운데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게 최고의 휴가다" 등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인스타그램 등에는 집 베란다에서 풀장을 설치해 물놀이를 하거나, 홈베이킹과 촉감놀이 등 아이들이 실내에서 즐기는 활동을 공유하는 부모들도 많다.

여름휴가 대신 '늦캉스(늦은 휴가)'를 가는 이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성수기를 피해 9~10월에 휴가를 떠난다. 제주 왕복 항공권은 이달 1인당 30만 원을 넘지만 10월이면 반값으로 뚝 떨어진다. 숙박료도 비성수기가 성수기보다 30~50%가량 더 저렴하다. 이달 말 강원도 평창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 직장인 이모(32)씨는 "남들이 쉬고 돌아올 때 떠나서 푹 쉬고 올 예정"이라며 "이상 기후로 여름휴가가 무색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여행업체 하나투어에 따르면 여름휴가철인 지난달 말보다 징검다리 연휴인 9월 말 추석 연휴와 10월 개천절 기간(9월 28일~10월 3일) 여행 상품 예약률이 약 20% 높았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폭염과 고물가에 '7말 8초' 휴가를 가는 이들보다 징검다리 연휴인 '9말 10초' 휴가자들이 많다"며 "특히 9월에는 날씨가 좋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지인 유럽을 찾는 이들이 동남아보다 더 많다"고 전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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