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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깎아 줄게, 혹등고래 지켜라"...가봉도 체결한 '환경 스와프'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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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깎아 줄게, 혹등고래 지켜라"...가봉도 체결한 '환경 스와프' 뭐길래

입력
2023.08.17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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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최초 BofA와 '자연·부채 교환'
외채 탕감 대신 바다에 1.6억 달러 투자
전체 부채 4% 불과, 수익률 미미 한계도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헤엄치고 있다. 대서양과 중부 아프리카를 잇는 가봉의 바다는 장수거북과 혹등고래 등 전 세계 멸종위기 해양생물의 대표적 서식지다. 게티이미지뱅크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헤엄치고 있다. 대서양과 중부 아프리카를 잇는 가봉의 바다는 장수거북과 혹등고래 등 전 세계 멸종위기 해양생물의 대표적 서식지다. 게티이미지뱅크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나라 아프리카 가봉이 최근 한 글로벌 금융사와 특별한 '계약'을 맺었다. 국가 부채 일부를 탕감받는, 꽤 좋은 결과도 얻었다. 가봉에 붙은 조건은 "바다를 지켜 달라", 딱 하나였다. 대외 채무(빚)를 자연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재원으로 바꾼, 일종의 '환경 거래'였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가봉은 전날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와 '환경-채무 스와프(Debt for nature swap)'를 체결했다. 앞서 가봉이 발행한 5억 달러(약 6,700억 원) 규모의 국채를 BofA가 매입해 '청색 본드(Blue Bond·해양 보존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로 전환하는 게 스와프 골자다. 채권 만기는 2038년으로, 향후 15년에 걸쳐 가봉이 해양 생태계 보호에 1억6,300만 달러(약 2,200억 원)를 지출하는 조건이 붙었다.

멸종위기 해양동물 주 서식지... 환경-부채 '맞교환'

환경-채무 스와프는 말 그대로 환경 기금과 부채를 맞교환한다는 뜻이다. 통상 선진국 금융사나 환경단체가 개발도상국 국채를 떠안는 대신, 해당 개도국은 변제된 채무를 환경에 투자한다. 2021, 2022년 벨리즈와 바베이도스 등 카리브해 국가들, 올해 5월 중남미 에콰도르 등이 이런 스와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아프리카에선 가봉의 이번 계약이 첫 사례다. 국채 이자 등 나라 빚 부담도 덜고, 해양 환경 보호에도 나설 수 있는 일석이조를 취한 셈이다.

가봉은 생존을 위협받는 해양 동물의 마지막 은신처다. 국제자연보호협회(TNC)는 가봉을 "장수거북과 혹등고래 등 120종 이상의 멸종 위기 해양 생물 서식지"로 꼽았다. 현재 영해의 약 26%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해 왔는데, 이번 스와프로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가봉의 구상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해당 채권에 Aa2를 부여했다. 가봉의 자체 신용등급(Caa1·정크)보다 무려 14단계 높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위험 보증을 선 결과다. 알리 봉고 온딤바 가봉 대통령은 이번 스와프 체결에 "청색 금융 메커니즘이 크게 성장해 가봉 같은 국가를 도울 것이란 희망을 주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가봉 퐁가라 국립공원의 한 해변. 국제자연보호협회 제공·AP 연합뉴스

가봉 퐁가라 국립공원의 한 해변. 국제자연보호협회 제공·AP 연합뉴스


"석유 의존도 높은 가봉, 녹색전환 한계" 회의론도

다만 환경-채무 스와프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일단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이 크지 않다. 해당 채권 이율은 6.097%로, 가봉 국채 유통시장 수익률(10~11%)뿐 아니라 다른 신흥국 시장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탓이다. 리처드 하우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신흥국 담당 책임자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FT에 말했다.

탕감 예정 부채 규모가 가봉 전체 부채의 약 4%에 불과하다는 점도 한계다. 정부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가봉 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녹색 전환'과 관련한 신용 위험이 크다는 것도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AP통신은 "나라 재정·환경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외국 기관에 쥐여준다는, 주권 침해 논란도 있다"며 "기후변화나 환경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란 지적도 많다"고 전했다. '개도국 부채 탕감'과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얘기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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