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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입력
2023.08.16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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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삽화=신동준기자

삽화=신동준기자


잇단 좌절의 현장, 형사법원
되묻는 이 시대 판사의 용도
우리 모두의 연대의식 필요

오갈 곳 없는 전과자는 출소 후 며칠 만에 노래방에서 양주 3병을 마시고 무전취식으로 구속됐다. 집과 병원에만 거주하던 정신질환자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후부터는 거의 교도소에서 살았다. 삶이 괴로워 약물에 손댄 간호사는 심각한 중독으로 가정마저 버리고 모텔과 구치소를 전전했다. 이들이 공짜 술을 마시고 프로포폴을 훔치고 환청에 빠져 감옥을 드나드는 동안, 도움을 받거나 치료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뿐인가. 백수 아들과 실직한 아버지는 일당 20만 원짜리 알바라고 굳게 믿고 일하다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는다. 이혼재판의 부산물이던 아이들은 소년 재판의 주산물이 되어 연어처럼 가정법원으로 회귀하고, 소년 보호처분을 여러 번 받은 다음 어엿한 성인범이 되어 사회로 방류된다. 오늘도 형사법정에서는 음주운전과 보이스피싱, 사기와 절도, 폭행, 스토킹, 강제추행, 강간, 살인, 산업재해, 마약, 아동학대 같은 온갖 사건이 선고된다. 그나마 7월 말에서 8월 초 2주간은 재판도 잠시 쉰다. 휴정기를 맞아 잠시 숨을 고르던 나는, 시를 읽다 벌컥 슬퍼진다.

'아이들이 검게 말라 쓰레기처럼 죽고, 오른쪽은 왼쪽을 씹고, 왼쪽은 오른쪽을 까고, 대가리는 꼬리를 먹고, 꼬리는 대가리를 치다 죽는 이 시대에, 시인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시인이 하느님께 묻는다(마종기, 시인의 용도). '골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 노파가 있고, 하꼬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영양실조의 소년이 있는 이곳에서, 하느님, 내가 고통스럽다는 말, 외롭단 말, 사랑이란 말 못 하게 하세요'라고 시인은 탄원한다. 그러다 시인은 '고통도, 사랑도 말 못 하는 섭섭한 이 시대에 시인의 용도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시인의 용도2).

나도 묻는다. 소년범의 건전한 성장도, 피해자의 일상 회복도, 아동학대로 죽어가는 아이의 구조도, 정신질환자나 중독자의 치료도, 생계범의 갱생도 돕지 못하는 판사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진실 발견도, 정의구현도, 권리구제도, 분쟁해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답답한 이 시대에 판사의 쓸모는 과연 무엇이냐고.

진도 바다에서 이태원까지, 구의역에서 태안까지, 오송에서 신림·서현역까지, 꽃 같은 아이들과 청년들과, 선한 시민들이 우수수 낙화하는 참혹한 이곳에서, 재난 담당자의 용도는, 검경의 용도는, 관료와 정치인의 용도는 무엇이냐고. 모든 이의 쓸모가 매섭게 추궁받는 이 시대에, 살아남은 자의 용도는 과연 무엇이냐고, 나는 묻고 또 묻는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자전소설 '나 아닌 다른 삶'은 두 명의 쥘리에트에 관한 이야기다. 한 명은 2004년 스리랑카를 덮친 지진 해일에 휩쓸려 사망한 네 살 여자아이고, 한 명은 프랑스 비엔에서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애썼던 소법원 판사다. 카레르의 처제였던 쥘리에트 판사는 서른셋에 유방암이 폐로 전이되어 죽었다. "쥘리에트를 나는 예전엔 몰랐고, 그 슬픔은 내 슬픔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혀 이 얘기를 글로 쓸 입장이 아니다"라는 카레르를 향해 쥘리에트의 절친한 동료였던 에티엔 판사가 말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도 어떤 측면에서는 당신과 같은 입장이에요. 그녀의 병이지 내 병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녀의 앞에, 옆에 있었지, 그녀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어느 지하차도나 지하철역, 어떤 배 안이나 축제의 거리, 그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로서 나의 유일한 용도는 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무용(無用)이 편만하니 질병과 재난, 사고와 범죄가 지척이다. 나 아닌 다른 삶은 없다. 나일 수도 있는 삶이다.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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