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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열병식...북한은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

입력
2023.08.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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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한국 공군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 '북한판 글로벌호크'와 모양새부터 동체에 새겨진 글씨까지 유사하다. 뉴시스

한국 공군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 '북한판 글로벌호크'와 모양새부터 동체에 새겨진 글씨까지 유사하다. 뉴시스

북한이 지난달 하순 연이어 개최한 '무장장비전시회-2023'과 '전승절 열병식'은 여러 의미로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이들 행사에서 북한은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을 공개하며 그들의 비대칭 군사력이 얼마나 강화됐는지를 과시했다. 또 개인화기부터 전차, 무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래식 무기들을 개발·배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열병식서 눈길 사로잡은 북한 무인기

그중 한국과 서방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무인기였다. 북한은 미국의 RQ-4 글로벌호크 고고도 무인정찰기, MQ-9 리퍼 무인공격기를 마치 복제라도 한 듯 똑같은 무인기들을 공개했다. 해당 무인기들은 열병식 행사에 앞서 북한의 무인기 개발·제조 시설이 있는 방현 비행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위성을 통해 식별됐고,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신미도 일대를 비행했던 정황도 포착돼 단순한 모형이 아닌 실제 작전 배치된 무인기라는 점도 확인됐다.

북한의 열병식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행사이고, 매 열병식에는 북한 지도부가 한국과 미국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과거의 열병식이 김씨 일가의 치적 선전과 주민 결속, 한·미에 대한 무력시위를 위해 치러졌다면, 이번 열병식은 북한이 현재의 국제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고, 앞으로 어떤 국가·군사전략을 펼칠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며 국제 질서가 급속히 신냉전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이 시기를 호기(好期)로 보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 절실한 중국과 러시아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 몸값을 높인 뒤, 중·러의 지원을 이끌어내면 체제 안정은 물론 한반도 문제 주도권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지도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열병식에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해 주석단에 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열병식 공개 무기는 국제사회에 보내는 북한의 메시지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 인근 장난(江南) 조선소에서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福建)함'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디젤 추진 방식인 푸젠함은 중국이 자체 설계해 건조한 최초의 사출형 항공모함으로 배수량은 8만여 톤이다. 상하이=신화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 인근 장난(江南) 조선소에서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福建)함'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디젤 추진 방식인 푸젠함은 중국이 자체 설계해 건조한 최초의 사출형 항공모함으로 배수량은 8만여 톤이다. 상하이=신화 연합뉴스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들은 단순히 새로 개발된 무기여서 열병식 참가 무기로 뽑힌 것이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무기들은 중·러는 물론 한·미·일과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였고, 그 메시지는 ‘북한판 반접근 지역거부(A2/AD)’ 능력이 완성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A2/AD는 이른바 ‘도련선(島鏈線)’ 계획에 따라 서태평양 지역에 미국의 군사력이 전개되는 것을 저지하고 역내 통제력을 확보한다는 중국의 영역지배 전략을 지칭하는 것이다. 중국은 서태평양 전역에 대한 A2/AD를 위해 대함 미사일로 무장한 폭격기와 대함탄도미사일, 항공모함 등을 대거 도입하고 있다. 중국의 A2/AD가 서태평양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면, 북한의 A2/AD는 중국의 A2/AD를 보강해주는 성격의 한반도 주변 국지 억제 전략이다.

중국의 A2/AD 자산들이 괌과 일본, 한반도 일대의 미군 전력을 겨냥한 성격이 짙다면,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판 A2/AD 자산들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미군 전력을 타격하기 위한 전력들이다. ‘초대형 방사포(사거리 400㎞)’, ‘화성-11가(사거리 800㎞)’, ‘화성-11나(사거리 450㎞)’, ‘화살(사거리 2,000㎞)’, ‘해일(사거리 1,000㎞)’은 최근 1년 사이 여러 차례의 발사 훈련 때 남한 내 주한미군 기지, 한반도 주변에 전개했던 미 해군 강습상륙함 전단과 전략원잠 타격을 상정한 공격 시나리오를 적용했다.

지난 3월 19일 미사일 도발 당시 발사된 ‘화성-11가’ 미사일은 북한 스스로 ‘핵 반격 가상 종합 전술 훈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발사 원점과 탄착점을 가상의 선으로 그은 뒤, 그대로 방향을 남쪽으로 돌리면 미사일 발사 시점에 제주 남동 해역에 있었던 미 해군 ‘마킨 아일랜드’ 강습상륙함의 좌표가 나온다. 지난달 19일의 미사일 발사 역시 발사지점과 동해상 탄착점을 선으로 연결한 뒤 남쪽으로 돌리면, 당시 미 전략원잠 켄터키함이 입항했던 부산해군작전기지가 나온다.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이 지난달 21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이 지난달 21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유사시 동시다발 타격 능력 갖춘 북한

북한은 유사시 ‘화산-31’형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화성-11가, 해일 수중드론을 이용해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접근을 저지하고, 화성-11나와 초대형 방사포, 대구경 조종방사포와 스커드 미사일 등 단거리 전술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전력을 이용해 남한의 주요 전략 거점에 대한 동시다발 타격을 시도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 한국군은 북한의 방사포·탄도탄 혼합 공격에 대한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고, 향후 10년간 그런 능력을 갖출 계획도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신형 전술 탄도미사일과 다양한 대구경 방사포들의 정확한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당사에서 공개된 증정식에 등장한 물량만 30문에 달했다. 각 방사포에 탑재되는 로켓탄은 6발이며, 각각의 로켓은 길이 7m, 직경 600㎜로 소형 전술탄도탄 수준인데, 이 30문만 일제 사격에 동원돼도 북한은 동시에 180발의 전술 탄도탄을 날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별개로 최소 100여 대 이상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스커드 미사일 발사차량, 그동안 여러 열병식에서 각각 6~9문씩 등장했던 기종별 방사포 발사차량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북한이 동시에 날릴 수 있는 대구경 로켓·단거리 탄도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400발을 가볍게 넘어선다. 강원 강릉·전북 군산·경기 오산·대구·충남 서산·충북 중원·경기 수원·경북 예천·충북 청주 등 전투기가 배치된 공군기지 하나당 동시에 30~40발 이상의 탄도탄 공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들 기지에 배치된 패트리엇 포대의 동시 대응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규모이며, 이는 개전과 동시에 한·미 연합 공군이 무력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형 아이언돔은 10년 후에나

각 미사일·로켓에 재래식 탄두가 들어 있다면 몇 시간 후 기지 기능 일부가 회복될 수는 있겠지만, 핵탄두가 섞여 있다면 한·미 연합 공군은 개전 직후 몇 분 만에 소멸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아이언돔 도입이 거론됐지만, 한국군은 국산화를 고집하며 2030년대 이후에나 ‘한국형 아이언돔’을 배치할 계획이어서 향후 10년간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북한이 새별-4형, 새별-9형과 같은 무인기를 만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저속·비스텔스 무인기는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훈련용 표적에 불과하다. 그러나 적이 전투기를 띄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무인기들을 위협할 천적이 사라졌으니, 이들이 전장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의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돔에 요격되고 있다. 스데로트=EPA 연합뉴스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의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돔에 요격되고 있다. 스데로트=EPA 연합뉴스

한·미 공군 전투기가 사라지면 고고도·장거리 비행 능력이 있는 새별-9형은 한반도 주변 해역을 비행하며 미국의 항모·상륙함 전단을 찾아 핵공격을 가하기 위한 표적 획득용 정찰기로 투입될 것이다. 중무장 능력이 있는 새별-9형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자체 레이더가 없는 황당한 자주대공포를 주력 방공무기로 도입 중인 한국 육군의 기갑부대를 사냥하고 다닐 것이다. 260여 대가 도입될 한국의 ‘차세대 대공포’인 천호는 유효 사거리 3㎞의 구형 30㎜ 기관포를 탑재한 무기인데, 새별-9형에 탑재되는 ‘북한판 헬파이어’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이란의 헬파이어 복제품 ‘카엠-114(Qaem-114)’는 8㎞ 이상의 사거리를 갖고 있다.

북한의 이번 열병식은 지난 수년간 준비한 북한의 대남·대미 군사력의 완성을 보여주는 충격과 공포의 무대였던 동시에, 북한이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 전력 마련에 손을 놓고 있던 한국군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장이었다. 과거의 한국군이 북한의 새로운 위협을 인지하고 대응 전력 마련 의사결정에만 몇 년씩 허비하던 무능한 집단이었다면, 지금의 한국군은 위협을 보면서도 마치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박고 모른척하며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집단이 된 것 같다. 똑같이 나라의 녹을 먹는 자라도 일반 공무원이 무책임하고 무능하면 나라의 살림이 어려워지지만, 군인이 무책임하고 무능하면 나라와 국민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군이 깨닫길 바란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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