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강남역·서현역 사건 범행 판박이
중대범죄 때마다 체계 정비 등 대책에도
허점 여전... '사법입원' 등 대안 정교해야
2016년 한국사회에 ‘여성혐오’ 이슈를 촉발시킨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조현병’ 환자였다. 그로부터 7년. 경기 성남시 흉기난동 피의자도, 대전 고교 교사 흉기피습 사건의 범인도 정신질환 병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잇따르는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을 정신질환탓으로 돌리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 범행과 질환의 연관성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들이 범행 전까지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중대범죄’의 가해자가 된 건 아닌지, 부실한 모니터링과 추적체계 등 시스템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 됐다.
땜질 대책으론 정신질환 범죄 못 막아
6일 경찰에 따르면, 성남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최모(22)씨는 과거 대인기피증으로 고교를 자퇴한 후 ‘분열적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 질병은 감정 표현이 제한적이고 타인과 관계 맺기에 무관심한 것이 특징이다. 대전 흉기피습 사건 가해자인 20대 남성 A씨도 2021년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치료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2015년부터 5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최근 3년간 치료 이력은 없었다. A씨도 의사의 입원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치료를 중단한 뒤 범행한 7년 전 강남역 사건 피의자와 판박이였다.
당국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법무부는 강남역 사건 후 유사범죄 방지 차원에서 ‘치료감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2019년 조현병 진료 경력자 안인득이 경남 진주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후에도 보건복지부는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24시간 응급대응체계를 확보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2012년 5,298건이었던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2021년 8,850건으로 67%나 증가했다. 강력범죄 역시 같은 기간 1.99%에서 2.42%로 늘었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보완해도 정신질환자 치료ㆍ관리에 계속 허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헌법재판소가 2016년 보호자 2인과 전문의 1인의 동의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했던 정신보건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이듬해 이른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강제입원은 훨씬 까다로워졌다.
"지속성 보장, 인권·치료시스템 조화 필요"
‘인권침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법 개정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중증 질환자를 보듬을 병원 밖 인프라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脫)시설만 강조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사건들도 ‘임의적 치료 중단’이 어떻게든 범행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환자의 인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치료 방법과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우선 법무부가 내놓은 ‘사법입원제’가 눈에 띈다. 타인을 해칠 우려가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 등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에 근거한 조치인 만큼 의료계 안에서도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 대안으론 약물치료 대신 지속적인 주사치료가 거론된다.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정신병 약물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만든 치료제로 한 번맞고 나면 약의 효과가 최장 3개월까지 꾸준히 나타난다. 조현병 환자들이 계속 약을 복용하는 비율이 2년 뒤에 25%로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적은 횟수로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제격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라도 인권과 치료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지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낙인찍기’가 우려된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한국에서 법원을 통한다고 하면 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면서도 “사법입원제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당사자의 신체적 권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이사는 “의사, 사회복지사, 국가기관 등이 참여하는 심사기구를 세워 환자 입장을 충분히 듣고 입원 치료를 결정하면 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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