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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고 자란 아이, 뇌 신경망까지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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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고 자란 아이, 뇌 신경망까지 망가진다

입력
2023.08.01 15:43
수정
2023.08.01 16:2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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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대아동 정신질환 원인 규명
스트레스로 신경세포 연결부위 손상
실험 쥐, 사람 뇌 유사체에서 확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학대받거나 방치된 채 자란 아동이 어른이 됐을 때 조현병, 우울증 등을 앓게 되는 이유를 국내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찾아냈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뇌 속 신경회로망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면서 성인기 정신질환 발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정원석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이 이 같은 내용을 31일 면역학 분야 국제학술지 '이뮤니티(Immunity)' 온라인판에 발표했다고 1일 밝혔다. 그간 아동학대나 방임이 다양한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은 임상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확한 발병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스트레스 → 별아교세포 포식작용 → 시냅스 손상 → 비정상 신경회로망

정원석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이뮤니티'에 게재한 연구 모식도. KAIST 제공

정원석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이뮤니티'에 게재한 연구 모식도. KAIST 제공

연구진은 뇌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세포인 아교세포 중 사방으로 돌기가 뻗어 있어 별처럼 보이는 '별아교세포'에 주목했다. 그리고 별아교세포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만나면, 신경세포들이 연결돼 있는 부위인 시냅스를 잡아먹는 포식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별아교세포의 이 같은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생쥐를 이용해 실험해 봤다. 그 결과 뇌 발달 과정에서 별아교세포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결합할 경우 관련 신호체계가 가동되면서 대뇌 피질에 존재하는 특정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선택적으로 잡아먹어 감소시켰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별아교세포의 포식작용을 비정상적으로 높인 것이다. 포식작용 때문에 시냅스가 망가진 쥐는 신경회로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성체가 됐을 때 사회성 결핍, 우울증 등 복합적인 행동 이상이 생겼다. 이런 현상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을 제거하면 모두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메커니즘은 인간 뇌 오가노이드에서도 확인됐다. 오가노이드는 세포를 배양하고 조직화해 실제 장기와 유사하게 만든 장기 유사체(미니 장기)다. 연구진은 사람 줄기세포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를 사용해 실험했는데, 여기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별아교세포의 포식작용을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석(맨 오른쪽)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 왼쪽부터 변유경 박사, 김남식 박사, 김규리 박사과정 학생. KAIST 제공

정원석(맨 오른쪽)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 왼쪽부터 변유경 박사, 김남식 박사, 김규리 박사과정 학생. KAIST 제공

이번 연구는 어른들의 잘못된 언행이 아이들의 건강과 삶에 실제로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실험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별아교세포의 과도한 포식작용이 학대받은 아동의 정신질환 발병에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했다"며 "다양한 뇌 질환을 치료하는데도 별아교세포 조절이 근본 타깃으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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