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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트라우마 확산… "휴대폰에 112 눌러놓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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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트라우마 확산… "휴대폰에 112 눌러놓고 걷는다"

입력
2023.07.28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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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곳곳서 잇단 흉기난동 오인 신고
반복되는 '살인 예고글'도 불안 키워
"소식 노출 줄이고 주변과 불안 공유"

2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 마련된 흉기난동 사건으로 숨진 20대 남성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한 어린이가 꽃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 마련된 흉기난동 사건으로 숨진 20대 남성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한 어린이가 꽃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전 모르는 여자가 저를 쫓아왔어요. 깜짝 놀라서 편의점에 뛰어들어가 112에 신고부터 했어요. 알고 보니 그냥 노숙인이었는데,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박지영(25)씨는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길거리에서 잔뜩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사서 쥐고 걷지만, 그걸론 안심이 안 된다. 칼부림 사건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호신용품을 준비해 봐야 갑자기 당하는 습격엔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은 남성이라고 다르지 않다. 관악구 대학가에 사는 정현우(27)씨도 "밤에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휴대폰에 112를 눌러놓은 채로 다닌다"며 "근처 사는 지인은 옆 사람이 든 우산을 보고도 놀랐다더라"고 전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6일이 지난 27일까지도, 상당수 시민들이 '칼부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서울 곳곳에선 오인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24일 밤엔 관악구 신림동에서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관악경찰서는 순찰차 15대와 형사 1개 팀을 출동시켜 1시간을 순찰했지만, 범행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26일 저녁엔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인근에서 "입에 흉기를 문 사람이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즉시 출동해 주변을 탐문했지만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은 없었다. 둘 다 불안감 탓에 상황을 잘못 파악한 오인 신고로 추정된다.

신림동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건 이후 잇따르는 '살인 예고' 때문이기도 하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엔 24일과 25일 연속으로 '신림역 일대에서 여성을 죽이겠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지역 맘카페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신림에선) 버스 탄 사람들까지 경계하게 된다"거나 "신림 지나갈 땐 이어폰도 안 끼고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초토화된 상권…"코로나보다 손님 없어"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거리에서 경찰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순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거리에서 경찰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순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신림동 일대 상인들은 손님이 들지 않아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신림역은 평소였다면 인근 서울대와 숭실대 등의 자취생 손님들이 몰렸겠지만, 요즘 이 일대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윤모(62)씨는 "손님이 코로나 때보다도 없어 직원 4명 중 2명이 이번 주 돌아가며 쉬고 있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조유빈(18)씨도 "(손님이) 평소 50~60%로 줄어든 뒤 회복이 안 된다" 전했다.

경찰과 구청은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순찰과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관악경찰서는 24일부터 특별방범활동을 시작, 사건 장소 근처에 순찰차 2대를 거점 배치하고 탄력 순찰을 시행 중이다. 27일 오후에도 맹훈재 관악서장이 경찰관들과 함께 신림역 앞 추모공간을 순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악구청도 위험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 일대 폐쇄회로(CC)TV 32대에 지능형 관제시스템을 설치했다. 신림 일대 CCTV만 24시간 확인하는 전담 요원도 배치했다. 근처 고깃집에서 일하는 황모(41)씨는 "가게 앞에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누가 나쁜 마음은 못 먹지 않을까 덜 불안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류의 충격적 사고에 따른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선, 국가와 개인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차량 순찰보단 시민과 가깝고 대응이 빠른 도보 순찰을 확대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트라우마는 관련 소식에 반복 노출될수록 심해지기에 내용(뉴스나 인터넷 글) 접촉을 제한하는 게 좋다"면서 "같은 불안을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위안받고 불안 정도를 점검해볼 것"을 조언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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