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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50대도 뛰어들었다…"야쿠르트 아주머니? 프레시 매니저라 불러주세요"

입력
2023.07.27 07:00
수정
2023.07.27 21:3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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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20년 차 베테랑…프레시 매니저 3인
입사 계기 제각각이지만…"고객과 정 못 끊어"

설희정(왼쪽부터), 김숙, 곽바다 프레시 매니저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노란 유니폼에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누비던 야쿠르트 아주머니(프레시 매니저).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주민과 친분을 쌓아 소식통으로 통했다. 단골들은 흔히 '여사님'이라고도 불렀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경멸이나 조롱 섞인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존중의 뜻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호칭도 어색해졌다. 유통전문기업 hy에서 활동 중인 2030세대 매니저가 6월 기준 591명까지 늘면서다. 20년 차 베테랑과 이제 막 일을 시작한 20대에게 이 직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20대, 30대, 50대까지 세 명의 매니저를 만났다.



20년 전 주부의 생계형 직업, MZ세대의 '힙'한 직업 되다


2000년대 hy 프레시 매니저의 모습. 과거 프레시 매니저는 4050세대 주부들이 생계형으로 일하는 직업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2030세대가 늘고 있다. hy 제공


이들은 이력도 독특하다. 곽바다(25) 매니저는 건국대 철학과 학생회장으로 학교 수업과 일을 함께하고 설희정(37) 매니저는 낮엔 프레시 매니저로 밤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심리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20년 차 김숙(58) 매니저는 인천에서 월 매출을 최대 3,000만 원까지 올려 2021년 전체 매출 1위를 뽑는 hy대회 '명예의 전당'을 탔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인 설 매니저와 곽 매니저의 경우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설 매니저는 주로 저녁에 직장인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하다보니 낮 시간이 아까워 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매출이 늘면서 영업 목표 달성에 재미를 붙였다"며 "본업만큼 배달도 중요해졌다"고 웃었다.

곽 매니저는 5개월 전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이 일을 접했다. "어릴 때부터 육체 노동을 하는 프레시 매니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는 그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땀 흘리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곽 매니저는 "때마침 공고가 눈에 들어와 용기를 냈다"며 "이제는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 매니저는 자녀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수동 손수레를 끌 수 있는 체력과 성실함만 갖추면 됐다. 20년 전엔 주부들이 살림에 보탬이 되거나 생계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최근 다양한 이유로 매니저에 나선 MZ세대를 보면서 김 매니저는 격세지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옛날 기업'이라는 건 편견…지인들 시선도 달라져

hy에서 활동 중인 설희정 매니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프레시 매니저로 일하는 일상을 공유한다. 설희정 매니저 제공


MZ세대에게 이 일은 초기 비용이 들지 않아 진입 장벽이 낮고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해 자격증 공부 등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운동량이 늘면서 건강해진 것은 덤이다.

배달을 할수록 회사와 직업에 대한 편견도 씻어낼 수 있었다.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hy는 막연하게 '옛날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세련된 유니폼과 냉장카트 '코코'의 기술을 직접 경험해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회사에는 판매 제품도 다양했다. 설 매니저는 "막연하게 야쿠르트 파는 회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샐러드, 건강기능 식품까지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게 많아서 놀랐다"며 "품질 좋은 제품이 많은데 아직 야쿠르트만 생각하는 고객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니폼 입은 모습을 알리면서 지인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육체 노동에 대한 편견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곽 매니저는 "배달하다가 직장 다니는 지인들을 만나면 밝게 인사한다"며 "코코 태워달라는 친구들도 있는데 '전국일주'하자고 농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객은 '정'(情)으로 구매해…관계 쌓기가 중요"

대학생 신분으로 야쿠르트 배달을 하는 곽바다(왼쪽) 프레시 매니저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처음엔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웠다던 MZ세대 매니저들은 이 일을 하면서 너스레가 늘었다. 서울 여의도에서 활동 중인 설 매니저는 매일 우연히 마주치는 직장인에게 인사하고 커피도 선물하며 친분을 쌓아나갔다. 심리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이 도와주면서 고정 가구가 200개를 넘었다. 설 매니저는 "증권가라 간 건강에 좋은 '쿠퍼스'나 샐러드 제품이 많이 나간다"며 "가끔 50만 원어치 단체 주문이 들어온다"며 웃었다.

김 매니저는 '판매왕'의 비결로 웃는 얼굴을 꼽았다. 당연한 일 같지만 꾸준히 실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폭우·폭설로 몸이 고달플 때도 웃음을 잃지 않아 그에겐 '스마일 아주머니'라는 별명도 생겼다. "한 고객이 야쿠르트 10개를 신청하면서 늘 저를 지켜봤다고 해요. 거울을 보면서 제 웃는 모습을 따라하다 보니 웃음을 찾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제품만 배달하는 게 우리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죠."(김숙 매니저)

평균 근속 연수가 12년이 넘을 정도로 매니저들이 오래 일하는 이유도 고객과 관계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얘기다. 김 매니저는 "정이 든 고객들과 도저히 인연을 못 끊겠더라"며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해서 일을 계속하다보니 20년이 됐다"고 했다. 설 매니저는 "단순히 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어엿한 전문직…'아줌마'보단 정식 명칭으로 불러달라"

hy의 프레시 매니저는 발효유 외에도 여성·유아·생활용품·화장품·밀키트 등 다양한 상품을 배달한다. hy 제공


앞으로 곽 매니저는 개인 시간을 더 투자해 길에서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는 유동 판매를 늘려갈 계획이다. 한두 달 안에 그만둘 것이라 여겼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오래 일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설 매니저는 매출을 더 키워 판매왕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 매니저는 MZ세대 매니저가 더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나이 상관없이 활기 넘치는 직장이 됐으면 좋겠다"며 "텃세 없이 영업의 비결을 전수해 줄 선배가 많으니 MZ세대가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독려했다.

곽 매니저는 소비자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전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말이 조금 듣기 불편해요. 우리가 택시기사나 택배기사를 '기사님'이라 부르지 아저씨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어엿한 전문직인 만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셨으면 해요."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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