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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수준 떨어진다고? '역대 최대 규모' 여성월드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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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수준 떨어진다고? '역대 최대 규모' 여성월드컵을 보라"

입력
2023.07.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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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상금은 남자의 4분의 1 불과
개막 전부터 '동일 임금' 요구 목소리
열악한 처우·감독 성추행 등 문제도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19일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호주 캠벨타운의 토마스 하셀 성공회 학교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19일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호주 캠벨타운의 토마스 하셀 성공회 학교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예술적인 볼 터치, 번뜩이는 움직임! 이게 바로 축구죠. 오직 '레 블뢰(프랑스 남자축구 국가대표팀)'만이 우리에게 이런 감동을 줍니다!"

'레 블뢰' 간판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5·파리 생제르맹)의 오른발에 걸린 공이 골망을 가른다. 약 1분간의 경기 하이라이트가 이어진 후 페이드 아웃되는 화면. 영상은 다시 처음으로 되감기된다. 충격적 반전. 방금 본 음바페는 음바페가 아니었다. 프랑스 여성축구 선수 델핀 카스카리노(26·리옹)의 움직임에 음바페의 얼굴을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입혀 만든 딥페이크 영상이었던 것.

여성축구는 남성축구에 비해 경기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없다는 편견이 단번에 박살 난다.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와 인공지능(AI) 기반 플랫폼 마르셀이 만든 이 영상이 전 세계적 화제를 몰고 있는 가운데,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이 20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프랑스 여자축구 선수 델핀 카스카리노(왼쪽)의 몸에 남자선수 킬리안 음바페의 얼굴을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입혀 만든 딥페이크 영상의 한 장면. 마르셀 제공

프랑스 여자축구 선수 델핀 카스카리노(왼쪽)의 몸에 남자선수 킬리안 음바페의 얼굴을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입혀 만든 딥페이크 영상의 한 장면. 마르셀 제공


똑같이 우승해도 남자는 상금 4배

이번 여성월드컵은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을 비롯한 32개 참가국 선수들이 우승을 노린다. 또 하나의 적수와도 싸워야 한다. 바로 성차별과 편견이다.

이번 대회에 걸린 상금은 1억1,000만 달러로, 2022 카타르 남성월드컵의 4억4,00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직전 대회인 2019 프랑스 여성월드컵(5,000만 달러)보다 3배 오른 액수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월드컵은 전 세계 여성축구 선수들의 동일 임금을 위한 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축구 종목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호주 여성축구 대표팀 23명은 지난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영상을 통해 "국제축구연맹(FIFA)은 같은 성취를 한 여성에게 남성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상금만 준다"고 항의했다. 이어 "여성선수 736명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영광을 안았지만, 아직도 대다수 선수는 기본적 권리인 단체교섭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직격했다.

대회 개막 전부터 동일 임금은 논란거리였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팀 선수들은 개막 2주 전인 지난 2일 보츠와나와의 평가전을 보이콧했다. 월드컵 참가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남아공축구협회(SAFA)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나이지리아 대표팀 선수들 역시 수당 미지급을 이유로 훈련을 거부했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지난해 여성 선수 3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9%가 국가대표팀에서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메건 라피노(앞)가 트로피를 들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리옹=AP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메건 라피노(앞)가 트로피를 들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리옹=AP

축구계에서 성별에 따른 상금·수당·연봉 차별이 문제가 된 건 2015년부터다. 여성축구 세계 랭킹 1위 미국 대표팀의 살아있는 전설 메건 라피노가 앞장섰다. 당시 캐나다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 여성선수들은 상금으로 200만 달러를 받은 반면 2014년 브라질 남성월드컵에서 15위에 그친 선수들은 800만 달러를 받았다. 6년간 지난한 법적 다툼 끝에 여성선수들은 동일 임금을 쟁취해냈다. 이후 잉글랜드, 웨일스, 브라질 등 6개 나라도 성별 상관없이 같은 상금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인 응우옌 티 민 응우엣은 "베트남 남자선수 1명이 여자선수 20명 이상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많이 번다"며 "일부 여자선수는 생계를 위해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아야 했다"고 BBC에 토로했다.

열악한 처우, 성추행도… "성차별 끝낼 행동 나서야"

임금만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잠비아 대표팀의 미드필더 에바린 카통고는 독일 n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흙과 잔디가 좋은 훈련장은 주로 남성대표팀에 배정됐고, 우리는 열악한 경기장에서 뛰어야 했다"며 "심지어 남성선수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느라 훈련시간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도 불거졌다. 잠비아의 최초 월드컵 진출을 이끈 브루스 음와페 잠비아 대표팀 감독은 이달 초 성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감독이 선수 누군가와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하면 반드시 응해야 한다"며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FIFPRO의 로이 베르메르 법률 담당자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여성축구의 구조적 문제"라며 시에라리온, 가봉, 미국, 베네수엘라, 호주, 아이티, 스페인에서도 성추행 사례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여성선수들이 공정한 처우와 안전한 환경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건 축구장처럼 평평하지 않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다. 스테이시 포프 영국 더럼대 스포츠운동과학과 부교수는 "여성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스포츠계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끝낼 수 없다"며 "경기장 안팎에서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미국 매체 컨버세이션에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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