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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늘의 어린이 죽이는 50년 전 집속탄...미국은 비극을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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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늘의 어린이 죽이는 50년 전 집속탄...미국은 비극을 잊었나"

입력
2023.07.18 04:30
수정
2023.07.20 10: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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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집속탄 연합’ 의장 인터뷰

라오스에서 발견된 집속탄 소형 탄두.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떨어진 탄두가 불발탄으로 남아 있었다. 레거시 오브 워 제공

라오스에서 발견된 집속탄 소형 탄두.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떨어진 탄두가 불발탄으로 남아 있었다. 레거시 오브 워 제공

“집속탄은 우크라이나인의 목숨은 물론이고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지금 라오스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그 생생한 증거이자 우크라이나에 주는 암울한 교훈이다. 전 세계에서 이 끔찍한 무기 사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미국이 지원한 '악마의 무기' 집속탄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13일 세라 구랩다라(39) '레거시 오브 워(Legacies of war)'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게임체인저’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집속탄이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레거시 오브 워는 미국 워싱턴에 기반을 둔 비정부 기구다. ‘미국이 벌인 전쟁’이 초래한 지뢰와 집속탄의 위험성을 알리고, 불발탄 제거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한다. 구랩다라 대표는 미국의 '국제 집속탄 금지 조약' 가입을 촉구하는 ‘지뢰 금지 및 집속탄 연합’ 의장도 맡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反)집속탄 활동가인 그에게 왜 집속탄이 위험한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물었다.

라오스 '집속탄 후유증'

집속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대량살상무기다. 한 개의 큰 폭탄이 상공에서 폭발하면 안에 탑재된 수백 개의 소형 탄두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발의 폭탄이 비처럼 보여 ‘강철비’라고도 불린다. 집속탄 한 발이 축구장 3개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레거시 오브 워 제공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레거시 오브 워 제공

구랩다라 대표는 “집속탄이 무서운 이유는 투하 당시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미래까지 저당 잡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속탄은 불발률이 20~40%로 높다. 전쟁 후 지뢰처럼 남아 있다가 세월이 흐른 뒤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집속탄 후유증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가 라오스다. 베트남 전쟁(1960~1975년)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이 라오스를 통해 물자를 공급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공중에서 집속탄을 쏟아부었다. 구랩다라 대표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군은 58만 차례에 걸쳐 라오스에 폭격을 가했고, 집속탄 2억7,000만 개가 투하됐다”라고 말했다.

비극은 현재진행형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집속탄 중 3분의 1(약 8,000만 개)이 불발탄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라오스에서는 정원을 가꾸다가, 소를 몰다가, 수로를 파다가 불발탄이 터지면서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최대 희생양은 전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어린이들이다. 구랩다라 대표는 “집속탄 소형 탄두는 공처럼 생긴 데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것도 있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며 “장난감인 줄 알고 만졌다가 팔다리를 잃거나 숨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라오스에서 집속탄으로 사망한 사람은 50명, 이 가운데 40%가 어린이였다.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등 집속탄 반대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라오스 세폰에서 집속탄으로 형제와 아들을 잃은 용캄(오른쪽 두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앞에 있는 흙구덩이는 아들이 집속탄 불발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었을 때 생겼다. 레거시 오브 워 제공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등 집속탄 반대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라오스 세폰에서 집속탄으로 형제와 아들을 잃은 용캄(오른쪽 두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앞에 있는 흙구덩이는 아들이 집속탄 불발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었을 때 생겼다. 레거시 오브 워 제공

구랩다라 대표는 지난해 라오스 세폰에서 만난 용캄(64)의 사연도 소개했다. 용캄은 전쟁 중 집속탄에 누나와 남동생을 잃었고, 그 역시 상반신에 부상을 입었다. 악몽은 반복됐다. 2003년엔 장남(21)이 집속탄으로 사망했다. 고철을 수집하던 중 흙 속에 있던 불발탄이 터졌다. 아들이 숨진 현장에는 아직도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다.

“가슴 아픈 과거를 언급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모든 다른 나라에선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구랩다라 대표가 전한 용캄의 말이다.

우크라서 라오스 비극 반복될까

라오스의 비극이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다. 50년간 제거된 불발탄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집속탄 사용은 후손들의 생계도 위협한다. 집속탄이 폭발하면서 땅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거나 독성 물질을 방출해 토양을 오염시키는 탓이다. "라오스에선 인구의 80%가 농사를 짓지만 농토의 37%가 불발탄 오염지대"라고 구랩다라 대표는 설명했다.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레거시 오브 워 제공

세라 구랩다라 레거시 오브 워 최고경영자. 레거시 오브 워 제공

라오스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집속탄을 피해 나라를 떠났다. 1984년 수도 비엔티안에서 태어난 구랩다라 대표 역시 6세 때인 1990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픈 역사는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반복되려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제공하자 러시아 역시 “우리도 더 많이 쓰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전장이 대부분 우크라이나에 있는 만큼 비극의 씨앗은 우크라이나에 뿌려진다. 구랩다라 대표는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포함한 123개국이 금지한 끔찍한 무기인 집속탄을 전장에 보낸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근시안적이고 비인도적이며 국제법을 무시한 처사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아픈 유산을 반복해선 안 된다. 미국 정부는 역사가 주는 분명한 교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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