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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은 하루 한 번 '외출'이 필요합니다

입력
2023.07.13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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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혁
서상혁아이엠디티 대표이사·VIP동물의료센터 원장

편집자주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수의사이자 동물병원 그룹을 이끄는 경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과 사람의 더 나은 공존을 위해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의사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동물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갓 입양한 강아지의 사료를 고르는 일부터 노령 동물의 심각한 질병 상담까지, 질문의 범주는 동물의 삶 전체를 관통하죠. 웬만한 질문에는 익숙한 저이지만, 얼마 전 유기된 강아지를 입양한 지인에게 특별한 질문 하나를 받았습니다. 반려견의 행복한 삶을 위해 이것만큼은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막상 대답하려고 보니 쉬이 말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동물의 지위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만큼, 무엇이 그들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보다 반려동물과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영국에서는 동물의 행복한 삶에 관한 고민을 녹여 다음과 같이 동물을 위한 '다섯 가지 자유'와 '실천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1979년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에 따르면, 동물을 위한 첫 번째 자유는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두 번째는 불편함(육체적)으로부터의 자유, 세 번째는 통증 및 부상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네 번째는 동물에게 충분한 공간과 적절한 시설을 제공해 정상적인 행동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꼽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물이 정신적 고통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해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자유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이상의 다섯 가지 자유는 모든 동물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이자 동물 복지 체계의 근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안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동시에 이는 다섯 가지 자유 중 가장 충족시키기 어려운 항목이기도 합니다. 앞의 네 가지 자유가 물리적 기준의 충족에 의해 획득이 가능한 기본적 자유라면, 다섯 번째는 동물의 어떤 상태를 불안과 고통으로 볼지에 관한 것부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까지 모든 것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고등적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정신적 고통을 바라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고통 상태에 대한 판단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반려견이 불안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충분한 산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정확한 숫자를 콕 집어서 하루에 한 번 이상, 1시간 이상의 산책을 함께하라는 조언이야말로 듣는 이의 편의적 해석에 따른 오차를 줄일 수 있는, 그리하여 동물이 불안과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제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지인에게도 똑같은 조언을 해줬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루에 1시간만 꼭 함께 산책하라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한 지인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도 산책을 해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데 덕분에 매일 산책하게 생겼네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수의사로 일하며 산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수많은 보호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에 1시간 산책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냐며 저를 외계인 보듯 쳐다보던 보호자, 일주일에 많으면 한두 번 산책을 해주면서도 충분히 해주고 있노라 당당하게 주장하던 보호자. 당시엔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인의 말속에서 그 이유를 찾은 듯합니다.

매일 한 시간,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을 약속하기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한가롭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조차 하기 힘든 행위를 동물에게 요구하다 보니 보호자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바쁘고 치열한지와 무관하게, 반려견의 정신적 자유를 위한 규칙적인 산책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저는 산책이란 말을 외출로 바꿔 불러볼 생각입니다. "선생님, 개도 하루 한 번 외출은 해야죠"라고요.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개들이 더 자주 산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상혁 아이엠디티 대표이사·VIP동물의료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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