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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예보 틀리기만 바랄 뿐"... 올해도 잠 못드는 반지하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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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예보 틀리기만 바랄 뿐"... 올해도 잠 못드는 반지하 주민들

입력
2023.07.13 00:10
수정
2023.07.13 08:1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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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침수피해 반지하·시장 가보니]
서울 동작·관악구 등 집중호우에 또 침수
시장도 금세 물 차올라, 대비책 마련 부산
올 여름 잦은 폭우 예보... 시름 깊어질 듯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앞 도로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물에 잠겨 있다. 독자 제공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앞 도로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물에 잠겨 있다. 독자 제공

“없는 사람들이 지하에 사는 건데, 집마저 물에 잠기니 너무 힘드네요.”

11일 오후 8시 30분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반지하 집 앞. 서모(69)씨와 아들 이모(43)씨가 폭우로 엉망이 된 보금자리를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후 4시쯤 갑자기 퍼부은 비는 이내 집 안으로 들이닥쳤고, 순식간에 이씨의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집이 지상보다 50㎝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비를 막을 물막이판ㆍ차수벽은커녕 물을 빼낼 변변한 배수구조차 없었다. 8평(26㎡) 남짓한 방에 물을 흠뻑 머금은 채 놓여 있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당시의 급박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안식처를 잃은 모자는 이날 저녁 지인 집으로 무거움 발걸음을 옮겼다.

1년 전 ‘물폭탄’ 공포가 되살아났다.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로 사망사고까지 내고도 부족한 대비 탓에 서울 동작구, 관악구 등 저지대 반지하ㆍ쪽방촌 주민들은 또 불안한 여름을 보내야 할 처지다.

"물난리 악몽 재연될라"... 반지하촌 초긴장

11일 폭우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한 약국 앞에 비를 막을 모래주머니와 빗물 차단 패널이 놓여 있다. 서현정 기자

11일 폭우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한 약국 앞에 비를 막을 모래주머니와 빗물 차단 패널이 놓여 있다. 서현정 기자

이날 동작구에는 시간당 최고 70㎜가 넘는 비가 쏟아져 긴급문자가 발령됐다. 덩달아 반지하 거주민들의 마음도 급해졌다. 서씨 집에서 30m 떨어진 반지하방에 사는 김정삼(54)씨는 늦은 밤까지 집 앞을 서성였다. 김씨는 “지난해 8월 8일 이사 온 당일 집이 침수돼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며 “옆집도 금세 물에 잠겼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새서 겁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 고립됐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관악구 신림동 주민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사고 현장엔 비를 막는 창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대비가 소홀한 주택도 적지 않았다. 주민 차모(49)씨는 “집주인이 세를 주지 않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거나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이 사는 집은 여전히 무방비 상태”라고 혀를 찼다.

영등포 쪽방촌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애순(75)씨는 “작년에도 150만 원어치 물건을 버려 속상했는데, 이날도 입구 문턱까지 물이 차 마음을 졸였다”고 털어놨다. 30년 가까이 쪽방촌에 살고 있는 정모(53)씨는 “쪽방촌으로 물이 흘러오는 배수구가 토사물에 막혀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단속 잘하는 수밖에"... 상인들 대비 안간힘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주민센터 앞에서 모래주머니를 담은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서현정 기자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주민센터 앞에서 모래주머니를 담은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서현정 기자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상인들에게도 1년 전 침수의 악몽이 재연됐다. 오후 6시 30분 시장에 있는 약국은 들어찬 빗물을 수습하는 데 한창이었다. 바닥에는 종이박스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고, 물을 빼내는 펌프와 호스도 보였다. 금은방 사장 강모(42)씨는 “비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내려 차수벽도 설치 못했다. 매장을 운영한 14년간 침수 피해를 4번이나 겪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상인들은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이불 가게를 하는 안모(64)씨는 “천재지변을 막을 순 없고 문단속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휴대폰 매장을 운영하는 주성찬(38)씨는 50㎝ 높이의 차수벽을 세웠다. 주씨는 “지난해 기기들을 바닥에 두고 퇴근했다가 1,000만 원가량 피해를 보고 보름이나 장사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자치구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날 상도3동 주민센터는 직원 10여 명을 투입해 관내 빗물받이와 배수구를 긴급 점검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이날만 10건 넘게 침수 피해 신고가 접수돼 물을 퍼내는 등 지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올해는 도깨비 같은 날씨 탓에 여름 내내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취약계층의 시름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당장 13일부터 수도권 일부 지역에는 250㎜가 넘는 호우가 예고됐다. 김애순씨는 “비가 와도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구청의 도움을 기다릴 뿐”이라고 토로했다.

11일 영등포 쪽방촌의 한 슈퍼 안에 지난해 폭우 피해로 생긴 곰팡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서현 기자

11일 영등포 쪽방촌의 한 슈퍼 안에 지난해 폭우 피해로 생긴 곰팡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서현 기자



서현정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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