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집중 경북 10곳 중 1곳만 취약지역
원인 80% 인위 개발인데 제도 허점 수두룩
①개발 평가 항목 적고 ②반영 시점도 느려
③급증 취약지 관리 난망... "시스템 바꿔야"
이번 집중호우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대부분 지역이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취약 지역 지정 방식으로는 개발 가속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산사태 위험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탓이다. 제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18일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3일부터 이어진 폭우로 산사태가 난 도내 10개 마을 중 국유림인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한 곳만 취약 지역으로 지정됐다. 인명 피해가 몰린 예천군의 감천면 진평리와 벌방1리도 산사태 위험도가 낮은 곳으로 분류됐다.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는 있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셈이다.
곳곳서 개발 사업... 위험도 평가엔 반영 안 해
산사태 취약 지역 지정ㆍ관리 제도는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마련됐다. 집중호우, 태풍 등 수해로 인한 산사태 가능성을 미리 점쳐 대비하겠다는 취지였다. 절차는 먼저 산림청이 기초조사를 한 뒤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현장 실태조사를 한다. 이후 전문가 검증을 거쳐 지역 위험도를 1~4등급으로 나눈다. 이 중 상위 1, 2등급에 포함되면 해당 자치단체장이 취약 지역으로 지정ㆍ고시해 집중 관리하는 식이다.
이번 호우 피해 마을들이 관리 대상에서 빠진 건 ‘인위적 개발 요소’를 간과한 탓이 크다. 2019년 국제 지질공학 학회지에 실린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의 논문에 따르면,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2011년 장마 기간 전국 산사태의 80%가 도로 건설이나 농지 개간 등 인위적 개발이 원인이었다. 이날 기준 12명의 사망자를 낸 예천에서도 다수 주민들은 과수원 조성을 위한 ‘토지 개간’을 산사태 주범으로 보고 있다. 최근 귀농ㆍ귀촌 인구가 유입되면서 경작 면적이 좁은 계단식 형태의 과수원이 평지로 확장되는 등 산사태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 산림청의 산사태 취약 지역 조사 평가표를 보면 △대상 지역 경사 길이와 경사도 △사면형 △임상 △모암 등 자연 요소 중심으로 기준이 설정돼 있다. 위험도 판단에 쓰이는 인위적 요소는 현장평가 항목 18개 중 1개에 불과하다.
개발 요소의 반영 시점이 늦은 것도 문제다. 올해 2월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 등급 산출 시 반영되는 지역 내 도로와 건설 등 요소는 거의 2019년이 기준이었다. 도로 확장 등 최근 4년간 진행된 개발 사업은 등급 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등급 기준을 관리하는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일부 요소만 현실적으로 반영돼 올해 추가 시행할 예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잦은 기상이변에 산사태 취약 지역도 급증하고 있다. 2018년 2만5,545곳이었던 취약 지역은 2만8,194곳(6월 기준)으로 9.6%나 늘었다. 현행 제도에 근거해 위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도 지속적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민 참여하는 촘촘한 예보제 마련해야"
달라진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경직성이 드러난 만큼 전반적 개선은 불가피하다. 이수곤 교수는 “사람이 건드리면 위험도가 3등급에서 1등급까지 단숨에 오르는 게 산사태”라며 “공공기관 홀로 위험도를 실시간 추적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참여형 예보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근본적으로 대규모 개발 계획을 세울 때 환경에 미칠 여파를 고려한 세부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가령 농지 개간 시 지정 배수로를 의무 설치하게 하는 등 무분별한 개발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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