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산 무기 구입 증가
마크롱 "미국 속국 될 수도"... 제동 걸어
성능 검증된 '미국 무기 선호'는 고민거리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려 온 유럽 국가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코앞에서 벌어진 전쟁의 위협을 실감하게 되자 ‘검증된 무기’를 사들였는데, 이는 대미 의존도 심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안보가 미국 정부·방위산업체의 입김에 휘둘릴 위험이 커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산만큼 실전 검증이 끝난 무기가 별로 없어 무작정 도입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유럽의 국방이 딜레마에 빠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럽 전역의 국방 예산이 증가한 상황에서 자체 개발 무기를 쓸지, 미국산 무기를 계속 수입할지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11, 12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의 최우선 의제도 △유럽의 국방비 증액 추진 △필요한 군사 장비를 결정하는 문제 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지난해 유럽 국방비가 전년 대비 13% 늘어난 3,450억 달러(약 447조 원)였다고 밝혔는데, 이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세였다.
막대한 군사비는 대부분 미국 방산업체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신냉전 우려가 커지면서 군비 증강에 나선 상당수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한 미국산 무기 구입에 팔을 걷어붙인 결과다.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어’, 대전차미사일 ‘재블린’, 무인기 ‘리퍼’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과 핀란드, 벨기에, 폴란드, 스위스 등은 미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 구매 계약도 체결했다.
"언제까지 미국산만 살 거냐" 제동 건 마크롱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지난달 19일 프랑스에서 열린 방공전략 회의에 참석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20개국 국방장관들을 향해 “언제까지 미국산 무기를 계속 사야 하느냐”며 “유럽인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에도 그는 “자체 국방 정책 수립 능력이 없다면, 미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 발언은 지난해 독일 주도로 출범한 유럽 방공시스템 ‘스카이실드’를 겨냥한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회사가 만든 SAMP-T 미사일 방어체계가 버젓이 있는데도, 독일이 미국산 장비를 이 시스템에 쓰기로 결정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영국도 프랑스에 힘을 보태고 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최근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무기 조달과 관련해 ‘미국이 최우선’은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나토 정상회의에서 “BAE시스템즈(영국 방산업체) 계약으로 우리의 155㎜ 포탄 생산 능력을 8배 늘리겠다”고 발표할 예정인데, 이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찰스 우드번 BAE시스템즈 최고경영자는 “이번 계약으로 최첨단 군수품을 공급하는 핵심 주권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산 선호' 유럽 분위기는 여전
다만 유럽 내에서 여전히 미국산 선호가 강하다는 게 한계다. 탈냉전 이후 생산된 유럽산 무기의 성능이 미국산에 크게 뒤처지게 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 군사 강국들이 군비 감축에 돌입하면서 무기 개발 투자를 줄인 탓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유럽보다는 미국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산 무기 배제가 결과적으로 나토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립국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던 튀르키예가 10일 돌연 지지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도 숙원 사업이었던 미국산 전투기 'F-16 확보'에 미국이 확답을 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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