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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2만원' 목욕탕보다 비싼 해수욕장 샤워비… 휴가철 '한탕' 노린 바가지 요금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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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2만원' 목욕탕보다 비싼 해수욕장 샤워비… 휴가철 '한탕' 노린 바가지 요금 여전

입력
2023.07.12 04: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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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해변' 조례 적용 안 받는 관리 사각지대
지정 해수욕장도 하나 하나 감시, 확인은 어려워
"시설 이용료 사전 고지, 결제 시스템 마련 필요"

울산 울주군 나사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어촌계에서 설치한 평상에 앉아 쉬고 있다. 평상 이용료는 하루 4만~7만 원으로 제각각이다. 울산= 박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나사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어촌계에서 설치한 평상에 앉아 쉬고 있다. 평상 이용료는 하루 4만~7만 원으로 제각각이다. 울산= 박은경 기자

경남 양산에 사는 이진아(39)씨는 지난 9일 아이 둘을 데리고 울산 울주군 ‘나사해수욕장’을 찾았다가 기분이 크게 상했다. 물놀이 후 씻을 곳이 없어 ‘샤워’ 안내문이 적힌 민박집에 문의하니 1인당 2만 원을 달라고 해서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듣고 돌아섰지만 다른 민박집도 대부분 1만 원 이상 요구하는 걸 보고 놀랐다. 이씨는 “흥정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 두 명만 1만5,000원에, 그것도 찬물로 씻기고 나왔다”며 “아무리 성수기지만 찜질방 딸린 목욕탕보다 비싼 게 말이 되느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바가지 요금'

울산 울주군 나사해수욕장은 샤워실이 없어 민박집을 이용해야 한다. 샤워비는 1인당 1만~2만 원이다. 4만~7만 원을 내고 평상을 이용하면 샤워비는 무료다. 울산= 박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나사해수욕장은 샤워실이 없어 민박집을 이용해야 한다. 샤워비는 1인당 1만~2만 원이다. 4만~7만 원을 내고 평상을 이용하면 샤워비는 무료다. 울산= 박은경 기자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올해도 어김없이 해수욕장 바가지 요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나사해수욕장은 평상 이용 시 샤워 포함 4만~7만 원, 샤워만 하면 1인당 1만~2만 원을 어촌계원들에게 내야 한다. 여름 한철 ‘한탕’을 노린 이런 상술이 가능한 건 이곳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수욕장법)에 따르면 해수욕장은 관할 지자체장이 직접 관리ㆍ운영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이 있거나 규모가 작아 해수욕장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는 ‘해변’으로 분류된다. 나사해수욕장도 여기에 해당해 조례 대신 어촌계나 번영회 등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요금을 정해 운영한다. 물론 주민들은 지자체에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신청 후 사용료를 내는 등 사전 절차는 거친다. 지난달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105일간 사용료는 96만7,260원. 하루 1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지자체에 지불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수십 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울주군 관계자는 “조례로 정한 샤워장 이용료는 1,000~2,000원 수준이고, 만 6세 이하는 무료”라며 “일반 해변은 점용ㆍ사용 신청에 대한 허가를 해줄 뿐 조례 적용을 받지 않고, 요금을 단속할 권한도 없는 실정”이라고 해명했다.

관리 구역, 사유지 뒤섞인 해수욕장

그렇다면 지정 해수욕장은 다를까. 비지정 해변보다야 사정이 낫지만 바가지 요금을 씌워 관광객들의 원성을 사는 곳이 적잖다.

경북 경주 관성솔밭해수욕장은 허허벌판인 모래사장에 돗자리만 깔아도 해수욕장번영회에서 1만 원을 걷어간다. 해수욕장에 지자체 관리 구역과 사유지가 뒤섞인 탓이다. 공유지와 사유지 경계를 알기 힘든 일부 관광객들은 어디에 앉든 돈을 내기도 한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수욕장, 하나개해수욕장, 십리포해수욕장은 개인이 들고 온 텐트나 타프(방수천)를 쳐도 최대 2만 원의 자릿세를 징수한다. 발만 씻어도 1,000원을 받는 곳도 있다. 인천에 사는 박정현(43)씨는 “대형마트에서 산 2ℓ 생수로 씻는 게 차라리 싸다”며 “해수욕장이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개인이 가져온 그늘막 설치는 금지하고 평상 이용객 아니면 해수욕장 쪽으론 차량도 못 들어오게 하니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통합 플랫폼 등 장기 대책 필요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전통어시장 상인들이 지난 6월 14일 '섞어팔기' '바가지 요금' '위생 문제' 등 오명을 벗고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대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전통어시장 상인들이 지난 6월 14일 '섞어팔기' '바가지 요금' '위생 문제' 등 오명을 벗고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대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지자체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특히 최근 지역 축제장 등 곳곳에서 바가지 요금 논란이 일면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이달 일제히 문을 연 해운대 등 부산 지역 해수욕장은 파라솔과 튜브 등 장비를 매표소에서 일괄 대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현장에서 부당 상행위를 바로 신고할 수 있게 했다. 강원 동해시는 1박 2인 기준 11만원으로 숙박요금 피크제를 도입했다. 머드 축제를 앞둔 충남 보령시는 축제 기간 해수욕장 물가특별관리팀과 부당요금신고센터를 운영한다. 국내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는 관광 물가 안정화를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실효성은 의문이다. 수많은 비지정 해변은 감시의 눈 밖에 있고, 지정 해수욕장이라 하더라도 일일이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서다.

상인회나 마을공동체 등이 개선 의지를 갖도록 지자체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근본적으론 해수욕장 외 해변 등에 대한 법ㆍ제도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사전에 각 시설에 대한 이용료를 고지하고 예약 및 결제까지 가능한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등의 장기적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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