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코네 다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음악 인생 59년 156분 동안 펼쳐져
어려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마음은 달랐다. 중고 트럼펫을 사다 주고선 아들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앞길을 정했다. 모리코네는 트럼펫 전공으로 12세에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들어갔다. 낮에는 음악원에 다니고 밤에는 생계를 위해 트럼펫을 불었다. 작곡에 흥미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알까 봐 몰래 공부했다. 유명 작곡가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편곡을 배우기도 했다.
연주자로 작곡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불협화음을 자신의 음악세계에 들이기도 했다. 명성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었다. 방송 프로그램 음악 편곡이었다. 그를 거친 방송 음악은 모두 인기를 끌었다. 미다스의 손이었다. 영화 쪽에서도 협업 제안이 들어왔다. 1961년 ‘파시스트’를 시작으로 59년 영화음악 인생이 열렸다.
모리코네는 영화 팬이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참여한 영화를 본 적은 없어도 그가 내놓은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이는 없을 듯하다. 모리코네는 과연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대가의 삶 굽이굽이에 어린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모리코네는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에 휘파람을 활용한 음악을 선보이며 영화계에 빠르게 정착했다. 세르조 레오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쿠엔틴 타란티노, 올리버 스톤, 배리 레빈슨, 워런 비티 등 수많은 유명 감독과 협업했다. 그의 손을 거친 영화만 400편이 넘는다.
영화는 자료화면과 영화인의 증언으로 대가가 활동했던 한 시절을 복원해낸다. 개인의 삶을 넘어서 영화사의 한 자락이 담겨있다. 알려지지 않았던 사연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친구이자 동료인 모리코네를 독점하고 싶었던 레오네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의 협업을 방해한 일, 원래 ‘끝없는 사랑’(1981)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반대로 반영되지 않은 곡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의 ‘데버라 송’으로 변신해 큰 인기를 끈 사연, 감독들과의 신경전 등이 흥미롭다. 상영시간 156분 동안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 귀에 감기기도 한다.
모리코네는 영화음악을 만들며 평생 갖은 영예를 누렸을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클래식 음악계에선 모리코네의 활동을 반예술적 행위로 봤다. 스승 페트라시는 한때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작업을 매춘에 비유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대중적 음악은 클래식보다 못하다는 엘리트 의식이 반영된 일들이었다. 2016년이 되어서야 미국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다. 5차례 고배를 마신 후였다. 하지만 모리코네는 노년에 클래식을 포함한 범음악계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모리코네와 ‘시네마 천국’(1990), ‘말레나’(2001) 등에서 협업했다. 모리코네는 토르나토레 감독이 아니면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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