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르포] 예보는 35도, 현장은 41.5도 '펄펄'... 폭염이 괴로운 야외 노동자들
알림

[르포] 예보는 35도, 현장은 41.5도 '펄펄'... 폭염이 괴로운 야외 노동자들

입력
2023.08.01 04:30
2면
0 0

31일 전국 180곳 중 178곳 '폭염특보'
지침 있어도 '권고'... 휴식은 언감생심
"정해진 일감 못 채우면 재계약 위태"

폭염경보가 내린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장. 낮 12시 30분부터 공사장을 둘러봤는데, 30분이 지나자 온도가 41.5도까지 올라갔다. 장수현 기자

폭염경보가 내린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장. 낮 12시 30분부터 공사장을 둘러봤는데, 30분이 지나자 온도가 41.5도까지 올라갔다. 장수현 기자


"30분만 있어도 몸 앞뒤 할 것 없이 지도 그린 것처럼 땀에 절어요. 보이시죠?"

31일 오후 1시 ‘폭염경보’가 발효된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장. 김모(53)씨가 티셔츠에 땀이 말라붙어 생긴 소금기 자국을 내보였다. 15년째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하루에 한 번만 옷을 갈아입으면 됐는데 요즘은 더위가 심해져 두 번은 환복해야 한다”며 “튼튼한 저도 일하다 머리가 핑 돌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5도로 예보됐지만, 그가 일하는 공사장 온도는 취재 시작 30분 만에 41.5도까지 치솟았다.

장마가 떠난 빈 자리를 폭염이 메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180개 지역 중 178곳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며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온열질환 예방지침’에는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1시간에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가장 뜨거운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하라고 나와 있다.

폭염특보가 내린 3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양영모씨가 수거한 전동킥보드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장수현 기자

폭염특보가 내린 3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양영모씨가 수거한 전동킥보드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장수현 기자

하지만 옥외노동자들에게 주기적 휴식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정해진 작업량을 채워야 하는 탓이다. 가이드라인이 의무가 아닌 ‘권고’에 그치는 까닭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하루 9시간씩 전동킥보드 수거ㆍ배치 일을 하는 양영모(52)씨는 “회사에서 ‘더우면 그늘에서 휴식하라’는 안내문자 정도는 보내지만, 할당량을 못 채우면 재계약이 위태롭다”며 30㎏짜리 킥보드를 쉴 새 없이 트럭에서 내렸다. 관악구에서 바닥 미장 작업을 하던 남모(63)씨도 “아무리 더워도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작업을 빨리 마치고 다음 작업에 들어가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푸념했다. 작업자들이 더위를 식히는 도구는 부채 하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시간 야외 노동으로 인한 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7월 26~28일 사흘 동안만 전국에서 온열질환자 178명이 나왔다. 2018~2022년 최근 5년간 온열질환이 원인이 된 산재 피해 노동자도 152명(사망 23명)에 이른다. 이틀 연속 폭염특보가 발령된 6월 19일엔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매장 야외 주차장에서 쇼핑카트 관리 업무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온열로 인한 과도한 탈수증상이 유발한 폐색전증’으로 숨졌다. 하지만 회사 측은 사망자가 “병을 숨긴 것 아니냐”면서 유감이나 사과 표명을 계속 미루고 있다.

31일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건설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광주 북구 제공·뉴시스

31일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건설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광주 북구 제공·뉴시스

말뿐인 지침보다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 5년째 택배 일을 하는 이모(35)씨는 “폭염이 유발한 과로사 등의 문제가 반복되다 보니 회사도 신경을 쓰고 있지만, 배송량이 많은 화ㆍ수요일은 거의 쉬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대전 유성구의 한 빌라 경비소장을 맡고 있는 최모(76)씨도 “(휴식 시간) 매뉴얼이 있는지도 몰랐다. 땀을 바가지로 뻘뻘 흘려도 일감 떨어질까 봐 잘 못 쉰다”며 휴식권 보장을 바랐다.

이에 집단행동으로 맞서는 노조도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조는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1일 하루 연차 등의 방식으로 파업하기로 했다. 2일부터는 출근하되, ‘체감온도가 33도일 때 시간당 10분, 35도일 때 시간당 15분씩 쉬어야 한다’는 고용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저항할 계획이다. 정성용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회사가 무시하는 지침을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수현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