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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상징이 천덕꾸러기로... 정전 70년에 방향 잃은 전쟁기념관[문지방]

입력
2023.06.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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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 맞대응 '5·24'조치 현장
육군본부 있던 자리... '군의 심장부'

독자 생존 어려운 '무료입장' 구조...
재정난에 외국 기업 전시장 되기도

지난 2010년 5월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 2010년 5월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MB)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합니다. 두 달 전 북한이 자행한 천안함 피격사건에 맞서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MB는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 전면 중단 △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및 배타적경제수역(EEZ) 항해 불허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 투자 사업 보류를 골자로 한 ‘5·24 조치’를 공개합니다.


軍의 심장부... "전쟁 교훈 통해 평화통일 이바지하겠다"

하지만 발표 장소는 청와대가 아니었습니다. MB가 찾은 곳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용산동1가 8번지)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 북한의 도발로 우리 장병 47명(한주호 준위 포함)이 목숨을 잃은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대북 메시의 엄중함과 결연함을 부각하려 전쟁기념관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전쟁기념관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 곳입니다. 육군본부가 1989년 충남 계룡대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 둥지를 틀었고, 그전에는 육군7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 창설된 장소입니다.

지금도 용산 대통령실 인근 비행금지 공역의 중심은 전쟁기념관입니다. 대통령실의 위치가 국방부 구청사임을 감안한다면 우리 군의 심장부에 전쟁기념관이 자리 잡은 셈입니다.

관련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전쟁기념사업회법은 ‘전쟁에 대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전쟁의 교훈을 통하여 전쟁예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전쟁기념관의 임무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호국의 메카'인 것이지요. 전쟁과 관련된 공공장소로는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최대 규모에 속합니다.

지난 2011년 2월 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쉐보레 올란도 신차발표회에서 모델들이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1년 2월 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쉐보레 올란도 신차발표회에서 모델들이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무료입장 시설 한계 뚜렷... 사기업 행사장 되기도

문제는 재정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최근 5년간 전쟁기념관을 운영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수입·지출액을 알아봤습니다. 전쟁기념사업회가 받은 정부 보조금은 △2018년 93억300만 원 △2019년 124억2,900만 원 △2020년 134억5,100만 원 △2021년 148억5,900만 원 △2022년 199억6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올해 예산에 책정된 정부 보조금은 전년에 비해 소폭 감소하긴 했지만 187억1,400만 원에 달합니다.

전쟁기념관은 무료입장 시설입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줄 만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정상적인 운용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손을 벌렸습니다. 좋게 말하면 사업 다각화, 조금 삐딱하게 보면 상업화입니다.

예식장과 임대 수입으로 부족한 돈을 충당해 왔습니다. 2018년 기타사업 수입으로 50억2,000만 원을 벌었습니다. 그해 정부 보조금의 절반이 넘습니다. 2019년에는 40억300만 원으로 정부 보조금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입이 급감해 2020년 19억 원, 2021년 15억 원에 그쳤습니다.

비단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전쟁기념관의 상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빗발쳤습니다. 천안함 사건 1년 뒤인 2011년,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한국GM이 5층 높이 가건물 ‘쉐보레 타운’을 세우고 3주간 신차 출시행사를 3차례 연달아 열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이 졸지에 해외 자동차회사의 광고판으로 전락한 셈입니다.

당시 한국GM은 전쟁기념관에 1억3,000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전시된 신차와 노출 의상 차림의 모델을 비추며 밤새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뒤쪽으로 안보전시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침몰한 참수리357호 고속정을 본떠 만든 호국의 전당이 고작 병풍 역할을 한 것입니다.

6·25전쟁 73주년을 맞은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평화의 광장을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6·25전쟁 73주년을 맞은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평화의 광장을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보훈부-국방부 '관할' 알력 다툼에도 끼어들어

이처럼 파행적인 운영을 놓고 그간 문제제기가 잇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이슈에 밀려 별 반향을 얻지 못했죠. 하지만 보훈처가 5일 보훈부로 승격되면서 포문을 열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15일 출입기자단 정책설명회에서 전쟁기념관 관할 이관과 관련 “물리적인 건축물(기념관)을 수백억 원을 들여서 만들 때는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만드는 것인데, 짓고 나서 운영에는 관심이 떨어진다”, “기념관의 역할과 기능을 생각해 보면 답은 명백하다”며 보훈부가 전쟁기념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장관은 또 “전쟁기념관은 국방력을 제고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와 실상을 똑똑히 보여주면서 후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누가 관할해야 하는지는 명명백백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호국보훈의 주무부처인 보훈부가 나서야 전쟁기념관의 난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전쟁기념사업회는 요지부동입니다. 국방부 차관 출신 백승주 사업회장은 16일 뉴스1 인터뷰에서 보훈부 이관 방안에 대해 “전쟁기념관은 단순히 박물관이나 보훈적 성격의 기관이 아니다"라며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백 회장은 “평일 하루 5,000~1만 명의 장병이 전쟁기념관에 와서 군인이 해야 할 일을 직접 느끼고 간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집회·시위 관련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뉴스1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집회·시위 관련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뉴스1


대통령실 이전 후 시위 '메카'... 외국인 "감동"과 정반대

이처럼 우리 내부적으로 알력이 불거지는 상황임에도 해외에서는 호평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한국을 찾은 주요국 외교 사절단은 앞다퉈 전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남편이자 취임식 축하사절단장을 맡은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쟁기념관 방문 사진을 올렸고, 영국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아만다 밀링 영국 외교부 아시아·중동 담당차관은 SNS에 “전쟁기념관에 있는 영국군 전사자 명비 앞에 꽃을 바치는 것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기념관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을까요. 상업화와 정부부처 간 알력에 더해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이전한 후에는 전쟁기념관 주변지역에 고성이 난무합니다. 집회·시위와 이에 맞서는 경찰의 대응으로 늘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일반인들이 선뜻 발길을 향하기 어려운 곳이지요.

7월 27일로 정전 70년을 맞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합니다. 존재 가치를 더 인정받고, 온 국민이 마음을 담아 의미를 되새겨야 할 전쟁기념관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전쟁기념관을 살리고 본래 취지에 맞춰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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