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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공동 묘지로, 비극의 지중해

입력
2023.06.22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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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태운 어선이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전복해 최소 79명이 숨지고 104명이 구조됐다. AFP 연합뉴스

이주민을 태운 어선이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전복해 최소 79명이 숨지고 104명이 구조됐다. AFP 연합뉴스

바다를 건너는 게 문제였다. 시리아에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유럽의 끄트머리와 닿은 튀르키예로 갔다. 그 해변에서 보이는 섬으로만 넘어가면 그리스 땅이었다. 그리스에서 바다 건너 이웃인 이탈리아까지 갈 수 있다면 '안전한 부자 나라' 유럽으로의 진입로가 열리는 셈이었다. 지난 14일 700여 명의 난민을 집어삼킨 바다가 바로 그 길 중 하나.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연안에서 47해리 떨어진, 지중해에서도 가장 깊은 수역이다.

절박한 사람들은 징검다리를 건너듯 지중해를 건넌다. 한발씩 한발씩 유럽으로, 제일 가까운 땅으로 넘어가며 생존의 기회를 엿본다. 내전에서 탈출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은 북쪽의 바다만 건너면 길쭉한 장화모양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코에 닿을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투명한 쪽빛 바다로 유명했던 휴양지 람페두사 섬은 이제 '유럽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로 불린다. 여의도 6배 크기의 섬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이 많을 때는 하루 1,000여 명. 구명조끼도 없이 낡고 좁은 보트에 탄 난민들이 물에 빠져 죽는 일은 부지기수라, "이 섬에 남은 관이 없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바다를 건너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제우스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암소로 둔갑시킨 이오(Io)는 끈질긴 쇠파리의 공격을 피해 바다를 건너는데, 그 '소가 건넌 물'이 바로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보스포루스해협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사제 헤로와 사랑에 빠진 레안드로스는 둘 사이를 가로막는 해협을 밤마다 헤엄쳐 오가다가 폭풍이 치는 날 파도에 휩쓸려 죽는다. 다음 날에야 해변에 떠밀려온 연인의 주검을 마주한 헤로는 슬픔에 빠져 탑에서 몸을 던지는데, 이곳이 지중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다르다넬스해협이다. 땅들이 서로 가까이 닿아 있으면 사람에게 건널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마련인가 보다.

희망을 가지고 그리스 땅을 떠났던 700여 명이 속절없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전까지, 난민선이 표류했던 '의문의 몇 시간'을 놓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이었던 지난 20일이 민망할 만큼, '약자의 분노'를 '다른 약자에 대한 분노'로 막는 일도 여전하다. EU 가입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난민을 수용하던 튀르키예는 대지진으로 거세게 일어난 국민의 분노를 난민에게 돌렸다. 이탈리아의 극우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람페두사 섬으로 달려가 난민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며 표몰이를 한다. 매일같이 좌초되는 배의 잔해가 아무렇지 않아지고, 또다시 최악의 사고나 역대 최다 죽음으로 경신되지 않으면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침몰하기 전에 찍힌 배 사진에는 식량까지 바다로 던져가며 가득 태워졌다는 난민들이 갑판에 빼곡하게 서 있었다. 갑판에라도 나와 있을 수 있어서 살아난 남자들과, 저 아래 화물칸에 갇혀 있어서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수백 명의 여자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갑판에 나올 권리조차 인종과 돈으로 따졌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은 세상이 고작 이 정도냐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이래도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그저 '뜻밖의 사고'일 뿐일까. 배 한 척이 가라앉는 사건 하나에도 수많은 차별과 모순이 겹겹인데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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