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자회 등, 이주 가사노동자 토론회 개최
"이주 가사노동자 처우 개선 없이 확대 안 돼" "시범사업 도입 필요성 떨어진다" 지적도
"휴식시간, 음식도 주지 않으면서 빨리빨리 일하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돈을 더 주지 않으면서 근무시간을 늘리기도,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오라고 합니다. 동료들 사정은 더합니다. 한 동료는 돌보는 8세 아동이 화가 날 때마다 가슴을 때려 멍이 시퍼렇게 들었지만 7년간 참아야 했고, 하루 18시간 동안 집안일하며 어린이 세 명을 돌보던 다른 동료는 남은 음식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5년째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필리핀인 솔리타 도밍고 무니지트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토론회 : 국내 이주가사노동자 사례발표와 실태, 홍콩의 시사점' 토론회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토론회는 11번째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이 마련했다. 이날은 가사근로자법 시행 1년을 맞은 날이기도 하다.
무니지트는 그동안 많은 차별을 겪었지만 고객에게 폭행, 성희롱, 모욕, 부당해고 등을 당하는 동료 외국인 가사노동자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처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이들을 보호할 종합 대책 없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 도입이 이뤄진다면, 더 많은 학대와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경고했다.
이미 차별적인 한국 가사 노동시장
이날 토론회에선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시범사업은 방문취업동포(H-2) 등 일부 비자 소지자만 가능한 가사·육아 분야 취업을 비전문취업(E-9) 비자 소지자에게 열어준다는 것이 골자다.
토론자들은 차별 문제에 대한 대책 없이 실시되는 시범사업은 국내 가사노동 시장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니지트는 동료들의 사례를 거론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학대, 성희롱, 예고 없는 해고 등은 일상화돼 있다. 그러나 권리를 위한 싸움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인종차별, 언어의 장벽이 있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족 가사노동자를 비교연구했던 김양숙 미국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비이주민-중국 동포로 이미 위계적 양분화가 이뤄져 있는 한국 가사노동 시장에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 더 낮은 임금에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집단이 생겨날 것"이라며 "이는 추후 사회통합, 지속가능한 질 좋은 돌봄 수급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검토 중인 시범사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가 공식 가사서비스 인증기관에 취업하면, 이 기관에서 고객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김양숙 교수는 "E-9 비자는 사업장 변경이 매우 제한돼, 고객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알선 기관이 이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계속 일해야 한다. 어떤 이주민이 기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성장 중인 공공돌봄... 굳이 외국인 노동자 도입 필요 있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확대 실시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선례로 언급되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돌봄·일가정 양립 제도가 부족하지만,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갖춰져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면서 "돌봄 제도 확충·개선과 더불어, 외국 인력 방안에 대한 고민은 가사노동자법 도입 후 5년은 지켜본 뒤에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또 홍콩과 싱가포르를 모방한 제도 설계는 위험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위원은 "민간 중개 방식인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수수료가 월급에 2~3배가량이고, 장시간 근로, 최저임금 미적용, 4명 중 1명은 거실이나 부엌에서 잘 정도로 열악한 거주환경 등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국제적으로 이주 가사노동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참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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