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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팩 붙이고 이름 숨긴 '007작전'... K드라마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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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팩 붙이고 이름 숨긴 '007작전'... K드라마에 무슨 일이

입력
2023.06.16 04:30
수정
2023.06.22 15:10
12면
0 0

기상천외한 팩 붙이고 얼굴 숨긴 '나쁜 엄마' 박보경
국내외 시청자 탐정놀이... "얼굴, 이름 가리고 '팩폭'하는 대중의 익명성 모티프"
'얼굴 가려서 뜬다' SF 왕국 할리우드선 스타 등용 법칙..."폐소공포증" 후유증도

'조커'부터 호랑이까지.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이장 부인(박보경)은 기상천외한 모양의 팩을 늘 붙이고 나와 시청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JTBC 방송 캡처

'조커'부터 호랑이까지.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이장 부인(박보경)은 기상천외한 모양의 팩을 늘 붙이고 나와 시청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JTBC 방송 캡처

'제일 궁금한 게 이장 부인 맨얼굴이다.'

드라마 '나쁜 엄마'가 5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톱5(5월 8일~6월 11일)에 머무르는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와 필리핀어 등으로 이런 내용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국내외 시청자들이 한결같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던 드라마 속 인물은 방송 내내 마스크팩을 붙이고 등장한 이장 부인. 얼굴을 꼭꼭 숨긴 채 가슴에 애완견을 안고 다니던 이장 부인은 입바른 소리로 영순(라미란) 등 마을 사람들을 늘 기겁하게 만든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공개된 배역 소개엔 '항상 팩을 붙이고 다녀 드라마 내내 얼굴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전부다. 제작진은 이장 부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도 극비에 부쳤다. 방송 내내 출연 배우의 얼굴뿐 아니라 이름까지 공개되지 않는 일은 이례적이다. 시청자들이 배역의 정체를 두고 탐정 놀이를 벌여 온라인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 해외에선 이장 부인을 연기한 배우로 엄정화가 지목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K드라마 '007 작전'의 이색 주인공은 바로 박보경(42).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이장 부인을 연기한 박보경.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박보경이 14부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 설정과 비밀스럽고도 푼수 같은 캐릭터를 매우 재밌어하면서 출연을 흔쾌히 수락했다"며 "심지어는 마지막까지 팩을 벗지 않으면 안 되냐는 제안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이장 부인을 연기한 박보경.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박보경이 14부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 설정과 비밀스럽고도 푼수 같은 캐릭터를 매우 재밌어하면서 출연을 흔쾌히 수락했다"며 "심지어는 마지막까지 팩을 벗지 않으면 안 되냐는 제안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드라마 내내 얼굴을 알 수 없다'는 이상한 공지

'나쁜 엄마'는 영순 남편의 사망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그의 가족과 얽힌 건설업체 사장과 동네 사람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들춘다. 이런 이야기 흐름에서 인물의 양면성을 시각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배세영 작가는 얼굴뿐 아니라 이름까지 숨긴 이장 부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영순 가족을 도와주던 마을 사람들은 마을 개발 사업 제안이 들어오자 영순의 돼지 농장 철거를 음모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장 부인은 "(영순이) 철석같이 믿었던 마을 사람들한테 뒤통수까지 맞게 생겼네"라고 혼자 쓴소리를 한다. "얼굴이 가려진 이장 부인만 마음껏 진실과 사실만을 말합니다. 가면을 쓰고 있었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 정작 누구인지를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스크팩을 붙인 이장 부인 캐릭터를 기획했어요. 모티프는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팩폭'하는 대중의 익명성이었고요. 이를 위해 개인적인 비밀 때문에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설정으로 꾸린 거죠."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난 배 작가가 15일 들려준 이장 부인 기획 의도다.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얼굴을 가리고 나온 이장 부인의 정체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도 궁금해했다.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한 누리꾼이 필리핀어로 올린 이장 부인을 연기한 배우를 묻는 질문. 그 밑에 배우 엄정화의 사진이 달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SNS 캡처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얼굴을 가리고 나온 이장 부인의 정체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도 궁금해했다.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한 누리꾼이 필리핀어로 올린 이장 부인을 연기한 배우를 묻는 질문. 그 밑에 배우 엄정화의 사진이 달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SNS 캡처


"얼굴 숨기지만 할 말 숨기지 않는 역 대리만족"

캐릭터의 반전을 위해 제작진은 "다정한 목소리로 가장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배우"를 수소문했고 박보경을 이장 부인 역으로 낙점했다. 박보경은 1회부터 14회까지 회마다 두세 종류의 마스크를 바꿔 쓰고 등장했다. 분장팀 스태프들은 곰과 '조커' 그림이 새겨진 30여 개가 넘는 기상천외한 팩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발품을 팔았다. 난관은 계속됐다. '나쁜 엄마' 촬영이 진행된 건 지난해 가을부터 12월까지. 거센 바람과 차가운 기온에 얼굴에 붙인 팩은 뚝 떨어지기 일쑤였다. 팩을 떨어뜨리지 않게 미스트와 에센스로 얼굴을 중무장한 뒤 카메라 앞에 섰다는 박보경은 본보에 "평소엔 팩을 하지 않는데 평생 할 팩을 이번 드라마 촬영하면서 다 한 기분이고 이젠 팩이 너무 익숙해 벗으려고 하니 오히려 부끄럽더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대본을 봤고 얼굴은 숨기고 있지만 할 말은 숨기지 않는 이장 부인으로 대리만족하며 연기했다"는 게 그의 말. 평균 70분 14회 분량에서 그가 얼굴을 드러낸 것은 마지막 회에서 40여 초. 총 방송 시간(980분)의 0.06%란 찰나에 맨얼굴을 잠시 드러냈음에도 그가 드라마에서 '신스틸러'로 거듭나게 된 배경이다.

영화 '아바타'와 '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특수분장으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나온 미국 배우 조이 살다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연합뉴스

영화 '아바타'와 '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특수분장으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나온 미국 배우 조이 살다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연합뉴스


'얼굴 가려서 뜬다' 조이 살다나의 인생 역전

비단 박보경만의 깜짝 성공만은 아니다. '얼굴을 가려서 뜬다'. 공상과학물(SF)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미국 할리우드에선 이 법칙이 스타 등용문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와 '아바타: 물의 길'로 최근 1년 새 한국 관객 1,4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미국 배우 조이 살다나가 대표적이다. 그는 얼굴을 온통 초록색이나 파란색의 특수 분장으로 숨겨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진짜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캐릭터로 대중에 깊게 각인된 결과다.

얼굴 없는 배우로 얻는 영광은 쉬 주어지지 않는 법.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외계인 멘티스를 연기한 한국계 프랑스 배우 폼 클레멘티에프는 "눈에 특수 렌즈를 끼고 촬영을 해야 하는 탓에 폐소공포증을 느꼈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는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평범한 연기' 대신 골룸('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킹콩'), 곰('모글리'), 유인원('혹성탈출' 시리즈) 등으로 얼굴을 숨기고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에 집중해 모션 캡처 배우로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워너브러더스 등 제공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는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평범한 연기' 대신 골룸('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킹콩'), 곰('모글리'), 유인원('혹성탈출' 시리즈) 등으로 얼굴을 숨기고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에 집중해 모션 캡처 배우로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워너브러더스 등 제공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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