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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정어리 떼는 처음"… 멸치 대신 제주·남해안 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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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정어리 떼는 처음"… 멸치 대신 제주·남해안 몰려와

입력
2023.06.16 16:00
수정
2023.06.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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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사라졌다 다시 급증
경쟁어종 멸치와 풍흉 교체
집단 폐사 전에 잡는 게 중요
통조림 등 자원화 추진 시급

4일 제주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사체를 수거하고 있는 이호어촌계 어민들. 이호어촌계 제공

4일 제주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사체를 수거하고 있는 이호어촌계 어민들. 이호어촌계 제공

"당연히 멸치라고 알았지 정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70년을 살면서 해변에 이렇게 많은 정어리가 몰려온 건 처음 본다."

14일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 만난 양계량 이호어촌계장은 신기한 듯 정어리 떼 얘기를 했다. 주민들은 지난 4일 이호해수욕장 앞 해변을 가득 메운 정어리 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양 계장은 “가끔 멸치 떼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해 집단 폐사한 경우는 봤지만 이번처럼 정어리 떼가 해변에 밀려온 일은 없었다”며 “정어리는 제주에서 잡히지 않는 물고기”라고 말했다.

제주 해변에 나타난 정어리 떼

지난해 10월 경남 마산만 일대에서 집단 폐사한 채로 떠오른 정어리 떼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주도에서 폐사한 정어리 떼가 나타나 주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16일 제주시와 이호어촌계 등에 따르면, 이달 초 이호해수욕장 앞에 몰려든 정어리 떼는 7톤 정도다. 어민들과 주민들은 멸치인 줄 알고 젓갈 등을 담기 위해 바구니로 퍼 날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개체가 몰려 폐사체가 늘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어민들이 나서 수거한 폐사체만 5톤이 넘었다. 더구나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가 폐사체를 수거해 확인한 결과, 주민들 생각과 달리 멸치가 아닌 정어리로 확인됐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정어리 자원동향을 관찰한 결과 지난 4월부터 정치망에 걸린 어획물 중 정어리가 91%를 차지해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며 “올해도 남해안 연안에 다량의 정어리 무리가 더 빨리 더 많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제주에서 타전된 정어리 떼 폐사 소식에 지난해 악몽이 떠오른 경남 창원과 부산 해안가 주민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올해도 많은 정어리 떼가 남해안 일대에 몰려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향후 10년 이상 유사한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정어리 떼 출현은 멸치와 관련이 있다. 정어리와 멸치는 40∼60년 주기로 풍흉 교체가 이뤄지는 경쟁 관계에 있다. 정석근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는 “일본 등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수온과 플랑크톤 등 생태계 구조의 변화로 경쟁관계인 정어리와 멸치 생산량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앞으로 정어리 어획량은 크게 늘어나는 반면 멸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87년 19만4,000톤으로 연간 최대치를 기록한 정어리 어획량은 2006년에는 공식적인 어획량이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2011년 2,500톤으로 통계에 다시 잡히기 시작한 뒤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어획량이 1만2,000톤까지 급증했다. 반면 2020년 18만5,000톤이던 멸치 어획량은 2021년 14만3,000톤, 지난해 13만2,000톤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오후 2시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40~50m 떨어진 바닷속에 거대한 정어리 떼가 등장했다. 해운대구 제공

지난해 10월 19일 오후 2시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40~50m 떨어진 바닷속에 거대한 정어리 떼가 등장했다. 해운대구 제공


비린내 잡아 통조림으로

지난해 정어리 떼 습격으로 곤욕을 치른 창원을 비롯한 남해안 지자체들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머리를 감싸고 있다. 경남도는 정어리 떼가 연안으로 밀려와 폐사하기 전에 산 채로 어획해, 1차 가공을 거쳐 상품으로 판매하거나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수산과학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1월부터 정어리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한 통조림 가공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최근 시제품을 생산한 데 이어 이달 안에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수산과학원은 통조림뿐 아니라 정어리 분말을 첨가한 고추장‧된장도 개발 중이다. 장미순 수산과학원 연구관은 “지난해 정어리 떼 집단폐사로 악취 및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정어리 자원을 식품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선제적으로 추진해왔다”며 “정어리 통조림 특허 출원 이후 산업체나 지자체에서 요구하면 기술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가 ‘어업 규제완화 시범사업’으로 올해 정어리 혼획을 허용한 것도 개체수 증가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멸치잡이 어선이 멸치를 잡는 과정에서 정어리 등 다른 어종까지 잡으면 불법이었지만, 올해는 다른 물고기도 함께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멸치 금어기가 끝나는 다음달부터 멸치잡이 어선이 정어리까지 잡게 되면 폐사하는 양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원시가 지난해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한 달 동안 수거한 죽은 정어리는 226톤에 달했다.


제주= 김영헌 기자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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