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쇼크가 온다: 2-③ 이주의 재구성]
사람이 없어 아우성인 농촌·제조업 실태
편집자주
1970년 100만명에 달했던 한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년. 기성 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는 마을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경기 포천시 가산면에서 시금치 농사를 짓는 이모(50)씨. 13일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이씨는 시금치를 상자에 옮겨 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외국인들을 향해 "농촌 마을을 버티게 해준 사람들"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포천에서 20년째 시설농사를 하는 이씨에게 외국인 노동자는 그저 보배 같은 존재다. 이날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10명의 외국인 노동자의 국적은 캄보디아, 태국, 네팔, 미얀마 등 다양했다. 이 외국인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가산면 농사의 대부분을 떠받친다. 이씨는 "이들이 빠져나가면 그날로 농사를 바로 접어야 한다"며 인력이 부족한 요즘 농촌의 절박한 분위기를 전했다.
가산면 인구 1만587명(지난해 말 기준) 중 외국인은 3,135명으로 29.6%를 자치한다. 포천시 전체 14개 읍·면·동 중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다. 포천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외국인 노동자는 7,602명인데, 2012년과 비교해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외국인들이 포천시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면소재지 인근에는 이제 동남아시아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장성산(59) 포천시 시설채소연합회장은 “2000년 중반까지는 주로 노인들이 농사 현장을 지켰지만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정착된 2010년 이후론 외국인에 의존한다”며 “손이 많이 가는 채소·화훼 시설재배 농업에 뛰어들겠다는 한국 젊은이들이 없다”고 상황을 전했다.
가산면 사례는 인력이 부족한 한국 노동시장의 실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가릴 것 없이 고된 노동을 수반하는 업종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마비될 정도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마을은 물론 전국 산업현장에서도,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한국인을 대신할 외국인 노동자를 늘려달라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고용 제도는 인력 만성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조선업도 외국인 노동자가 귀한 몸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10년 이상 불황의 터널을 겨우 지나, 이제서야 호황기 초입에 접어든 조선업. 한국은 조선 수주 잔량 기준으로 부동의 세계 1위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태계의 근간을 지탱한다. 업계 '빅3'로 꼽히는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의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까지 6,000여 명 수준. 하지만 수주 잔고가 3년치를 넘길 정도로 일감이 넘치면서 기존 인력으로 수주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 국내 조선업계에서 1만 3,000여 명의 생산직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부랴부랴 2025년까지 연간 5,000명 수준의 고용허가제(E-9 비자) 전용 쿼터를 신설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숙련노동자로 분류되는) E-7비자로 들어온 인력 대부분도 잡일에 투입된다”며 “인력 파견 전에 6개월 정도는 조선 도면과 용접을 가르치는 직업훈련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의존 커지는데, 불만 여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역대 최대인 약 11만 명 수준이다. 이 중 3만8,000명이 농업에 배정됐고, 나머지는 조선업 등 산업현장에 투입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갑'이 되는 현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토로했다. 경기권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 A(25)씨는 “E-9 비자로 입국하면 취업 연장과 재입국 취업까지 최대 9년 8개월간 일할 수 있지만 갱신 과정마다 고용주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결국 내 의지나 숙련도와 상관 없이 고용주와의 관계에 따라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농어촌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파종‧수확 등 계절적 특징 때문에 단기간 일손이 필요한 분야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의 최대 체류 기간을 5개월에서 8개월로 늘렸다. 하지만 현장에선 만족해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전남 무안군 관계자는 “6월 한 달은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7월로 넘어가면 할 일이 없는 게 농촌의 특성”이라며 “계절근로자는 3~5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필요한 시기가 특정돼 있어 농민들 처지에선 막대한 인건비를 들여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현장에선 땜질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다고 입을 모은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E-7 비자의 경우 '내국인 노동자 수'에 따라 쿼터가 정해져 있는데, 인력이 절대 부족한 대부분의 농촌이나 지방 기업들의 경우 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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