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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마늘밭에서 기꺼이 일하는 베트남 청년들... 정주 이민이 인구 대안 될까

입력
2023.06.26 10:00
수정
2023.06.28 19:4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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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쇼크가 온다: 2-③ 이주의 재구성]
한국형 이민정책 어떻게 짜야 하나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지난달 3월 17일 오후 대구대에서 열린 지역특화형 비자 취업박람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취업상담을 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지난달 3월 17일 오후 대구대에서 열린 지역특화형 비자 취업박람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취업상담을 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45%에 달하는 경북 의성군. 젊은이보다 노인이 더 흔한 국내 최고 고령 지자체인 이곳에, 올해 2월 베트남에서 온 스물다섯 살 여성이 뿌리를 내렸다. 응우옌 티 푸엉 타오다.

타오는 6년 전 한류를 동경하며 한국으로 와 부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우연히 방문한 의성군에서 매력을 발견, 이곳을 '제2의 터전'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의성은 가족들과 함께 토마토 농사를 지었던 베트남 고향 할롱베이 풍경과 비슷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끌렸죠. 대학시절 만난 베트남 남편과 결혼해서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정주하기로 했어요." 지금 마늘농장에서 일하는 타오가 의성을 택한 이유다.

타오가 의성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시범사업인 '지역특화형 비자' 덕분이다. 지역특화형 비자는 인구 감소 지역에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거주·취업한 외국인에게 △거주비자(F-2) △재외동포비자(F-4)를 미리 발급하는 제도. F-2를 발급받은 외국인과 F-4를 발급받은 동포가 각각 5년·2년 이상 해당 지역에 체류하면 영주권(F-5)을 제공하는 식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민문호 개방 인구소멸 대안으로 주목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 현상을 겪으면서,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이민정책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을 신설하기로 하면서, 상반기 관련 로드맵(이행안)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상황. △한류의 꿈을 이루려는 베트남 청년과 △젊은 일손이 부족한 고령 지자체가 '윈윈'할 수 있었던 타오 사례처럼, 부족한 인력을 효과적으로 충원하기 위한 '한국형 이민정책'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인구절벽에 따른 일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 문호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인구 감소가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그나마 남은 인구마저 양질의 일자리가 집중된 수도권으로 몰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지방 소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고, 유럽·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도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이다. 다만 인구 문제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은 △시민권 신청을 위한 거주 기간 축소 △영주권 발급을 위한 체류기간 축소 등 적극적 정책을 통해 해외 인력을 자국에 모셔 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 지금 시작해도 이들에 비해 몇 발 뒤처졌다. 그래서 법무부는 "상반기에 저숙련 비자 트랙으로 인력 11만 명을 새로 들여오고, 고숙련 비자 트랙(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 등)을 도입하겠다"며 투트랙 작전에 나섰다.

강원 고성군 B대학 앞에 네팔 식당을 차린 어속(윗줄 왼쪽)이 지난달 27일 오후 가게를 찾은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강원 고성군 B대학 앞에 네팔 식당을 차린 어속(윗줄 왼쪽)이 지난달 27일 오후 가게를 찾은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정주형 시스템 구축에 힘 쏟아야

전문가들은 해외 인력을 단순히 많이 들여오는 것보다 타오의 의성 정착 사례처럼 '정주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흔성 경북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지역특화형 비자 같은 이민정책을 활용해, 정주를 통한 인구 증가 및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정부는 양적 확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특화형 비자만을 남발하는 것도 장기적 대안이 되긴 어렵다. 인구 소멸 지역으로 자진해서 가려는 외국인이 있어도 사회 통합이나 지역 정착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5년 후 영주권을 받은 뒤 해당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수도권 등지로 떠나버리고 만다.

정부도 이런 점은 인식하고 있다. 이민청 출범을 천명한 법무부는 올해 하반기에 △외국인정책 사회통합 평가제 △연간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 도입 등 '한국형 이민정책'에 최적화된 제도를 발표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럽연합(EU) 이민자통합지표 △이민자통합정책지수(MIPEX) △아일랜드 이민통합전략 △영국∙독일 통합지표 등 해외사례를 참조하고, 한국의 특수한 환경을 반영한 국내지표를 개발할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의 상황에 맞는 사회통합 지표가 마련돼야 지역특화비자 등 정착형 이민 환경을 조성해 지역격차를 메울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 발표를 앞둔 '연간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 역시 '한국형 이민정책'에 맞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산업별로 필요한 노동력을 측정한 뒤 취업비자 총량을 설정해 노동력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외국인 노동력 총량 측정이 이뤄지는 영역은 비전문인력(E-9) 비자밖에 없다. 정부가 전문성을 갖춘 해외인력을 유치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론 단기간(3년+1년 10개월) 머물 인력만 세고 있는 것이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10년 넘게 E-9 비자 발급에 필요한 인력을 5만~6만 명으로 고정한 것은 그간 변화한 산업구조 및 인구구조 변화 지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별 직업군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이민정책 총괄을 담당할 수 있는 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며 "비전문인력 비자를 발급받은 노동자를 향후 숙련기능인력(E-7-4) 비자로 끌어올려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정주형 이민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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