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노동단체 문화제 잇단 강제해산
경찰 "정치적 목적에 집회 장소 위반"
법원, 사안별 판단... 해산도 까다로워
최근 경찰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야간문화제를 ‘변칙 집회’로 간주하고 연이어 강제해산했다. 경찰은 “집회금지 구역에서 문화제를 가장한 정치적 의사 표시라 공권력 동원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최 측은 “집회 성격을 띠더라도 강제해산은 적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쟁점은 크게 어디까지를 집회로 볼 것인지와 경찰의 강제해산 권한이 적절하느냐에 모아진다.
경찰 "문화제 가장 집회"... 명확한 기준 없어
9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야간문화제를 개최했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15조에는 ‘학문, 예술, 체육 등에 관한 집회는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돼 있다. 정치성을 배제한 집단의 발언 권리는 폭넓게 인정하자는 취지다. 공동투쟁 측도 문화제임을 앞세워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
경찰 생각은 다르다. 문화제 당일 공동투쟁 측은 불법파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지엠, 현대제철 등의 기업 재판을 조속히 끝내 달라는 구호를 제창했다. 또 인근 횡단보도에서 “비정규직 임금 올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확실해 집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은 이날 3차례 자진해산 명령을 내렸고, 주최 측이 불응하자 경력 700여 명을 동원해 참가자들을 1명씩 현장에서 끌어냈다.
사실 집회냐 아니냐를 무 자르듯 나누는 기준은 없다. 법원은 주최, 목적, 장소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집회성 여부를 판단한다. 법원은 2015년 세월호국민대책회의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문화제 역시 “음악, 율동이 많다 하더라도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친 점을 감안하면 (문화제) 형식만 빌린 집회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화제의 성격을 양측이 상반되게 받아들이는 만큼, 충돌을 피하려면 개최를 두고 매번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법 "미신고 집회도 무조건 강제해산 안 돼"
다만 경찰 주장이 맞다 해도 강제해산까지 용인되는 건 아니다. 2012년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건’ 관련 미신고 집회 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경찰의 해산 명령은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도 폭력 행위 등이 없으면 무작정 공권력을 투입해선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동투쟁 측이 “불법은 윤석열 정권과 경찰이 저질렀다”고 규탄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은 집회 장소가 대법원 앞이라는 점이다. 원래 대법원 인근은 집회금지 구역이다. 집시법 11조 2항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때'를 제외하고 헌법재판소 및 법원 100m 이내 장소에서 집회를 불허하고 있다. 경찰이 강제해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도 “문화제가 재판에 영향을 줄 의도가 분명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집시법에서 말하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는 담당 법관을 협박한다든지 하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준”이라며 경찰의 자의적 법 해석을 비판했다.
정부가 집회ㆍ시위에 엄정한 대응을 공언한 만큼, 시민사회와의 비슷한 충돌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경찰이 해석과 관점이 다른 '불법성'에만 매몰돼 이분법적 잣대를 계속 들이댈 경우 집회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당시 김선일 경찰대 교수는 ‘국제인권기준에 비춰본 한국의 집회ㆍ시위’ 논문에서 “집회를 바라보는 근본 시각을 ‘평화적ㆍ폭력적’ 개념에 둔 헌재와 달리 집시법 관점에선 미신고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돼도 위법 집회에 해당하면 주최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