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현수막 가이드라인' 발표에도 난립 여전
현수막 규제 강화 법안... 민주당 반대로 처리 어려워
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앞 사거리. 현수막 40여 개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울타리에도 현수막이 줄지어 달렸다. 우회전하는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위험할 정도였다.
현수막에 적힌 문구는 각양각색이었다. ‘동성애 반대·공산화 반대’를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교회의 부흥의 열쇠는 성령운동’이라며 종교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부정선거의 주범인 사전투표와 전자개표기를 폐기하라’는 문구도 있었다.
현수막마다 '대한당'이라는 마크가 선명했다. 당원 수가 2021년 기준 5,565명인 미니정당이다. 정당 설립을 위한 최소 당원 수(5,000명)를 겨우 넘겼다.
특정 정당의 현수막이 어떻게 서울 한복판의 공공장소를 독차지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당초 야외에 현수막을 내걸려면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정당이 거는 현수막은 예외로 규제를 받지 않도록 국회가 법을 고쳤다.
규제 완화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쟁성 현수막을 앞다퉈 내걸어 '현수막 공해'라는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그런데 정치권이 대책 마련에 뒷짐을 진 사이 이제는 군소정당이 빈자리를 파고들었다. 특정 집단을 겨냥한 혐오 표현이나 음모론이 무차별로 현수막에 담겼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려되는 부분이다.
행안부 현수막 가이드라인 발표에도 난립 여전
정당 현수막 난립 문제가 커지자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어린이나 노인 보호구역 등지에는 정당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고, 통행에 방해되는 곳에는 2m 이상 높이에 현수막을 걸도록 했다. 하지만 마포구 사거리 사례에서 보듯 근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현수막 규제 강화 법안 발의됐지만 민주당은 반대
국회가 다시 나섰다. 여야가 앞다퉈 법안을 발의했다. 정당 현수막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은 지난해 3월 이후 8건에 달한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는 묵묵부답이다. 논의에 전혀 진척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정당 현수막 규제 완화를 주도한 터라 불과 1년 만에 규제를 강화하길 꺼리는 것이다.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김교흥 의원은 7일 통화에서 "(규제 강화를) 논의할 계획이 없다"면서 “현행법상으로도 안전 등에 방해가 되는 정당 현수막은 구청이 얼마든지 철거할 수 있으며,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교통수단 안전과 이용자의 통행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광고물'은 정당 현수막이라도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안전 우려'라는 주관적 기준에 따라 지자체가 정당 현수막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다. 철거할 경우 정당들이 '지자체가 정당법보다 위에 있느냐'고 항의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앞서 대한당 현수막에도 ‘본 현수막을 훼손 또는 철거하면 정당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현실을 전혀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이라며 "법을 고치지 않으면 현수막 난립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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