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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댐 폭발에 수천 명 탈출 러시... “체르노빌 이래 최악의 생태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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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댐 폭발에 수천 명 탈출 러시... “체르노빌 이래 최악의 생태 재앙”

입력
2023.06.08 04:30
수정
2023.06.08 15:55
2면
0 0

새벽에 파괴된 댐...강 타고 민가 덮친 홍수
"최대 80개 마을·4만2,000명 피해 볼 것"
오염물 방류에 지뢰 유실... 지역사회 붕괴

6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한 마을에서 딸을 등에 업은 한 남성이 생필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카호우카댐 붕괴 여파로 침수된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6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한 마을에서 딸을 등에 업은 한 남성이 생필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카호우카댐 붕괴 여파로 침수된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마을 14곳은 그야말로 혼비백산이 됐다. 갑작스러운 대피령이 내려져 수천 명이 허둥지둥 마을을 떠났다. 미사일 공습 때문이 아니다. 이날 새벽 2시쯤 카호우카댐이 파괴됐고, 저장된 물이 드니프로강을 타고 내려와 주거지를 덮친 탓이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이번 댐 붕괴가 수많은 민간인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냈을 뿐 아니라, 향후 엄청난 환경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쟁, 그 이후’의 재앙마저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엔 미사일 아닌 홍수... 수천 명 피난길 올라

우크라이나 카호우카댐 붕괴 피해(예상). 그래픽=김문중 기자

우크라이나 카호우카댐 붕괴 피해(예상). 그래픽=김문중 기자

강의 급류를 타고 흘러내린 물은 빠른 속도로 마을을 집어삼켰다. 주민들은 생필품을 가득 채운 비닐봉지와 반려동물이 든 가방을 둘러멘 채 이른 시간부터 긴박한 피난길에 올랐다. 구명보트를 탄 경찰관들은 물에 잠긴 주택가를 돌며 거동이 불편해 고립된 이들을 대피소로 실어 날랐다. 댐 주변 지역에서만 가옥 수천 채가 떠내려갔다. 한 동물원에선 300여 마리 동물이 모두 익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우주기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이날 오후 기준 제주도(1,850㎢)보다 넓은 약 2,500㎢ 면적이 침수됐다. 가디언은 “댐에서 6㎞ 떨어진 헤르손시(市)는 밀려드는 물로 수면이 30분마다 6~8㎝씩 상승했다”고 전했다.

지구관측 업체인 플래닛 랩스 PBC가 4일(폭발 전)과 6일(폭발 후) 우크라이나 헤르손 카호우카댐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헤르손=AP 뉴시스

지구관측 업체인 플래닛 랩스 PBC가 4일(폭발 전)과 6일(폭발 후) 우크라이나 헤르손 카호우카댐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헤르손=AP 뉴시스

붕괴된 댐에선 계속 물이 흘러넘치고 있다. 수해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오후 우크라이나 검찰은 “최대 80개 마을, 4만2,000명이 댐 붕괴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많은 실종자·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고 우려했다.

‘밀려드는 물’만이 문제가 아니다. 드니프로강 인근 지역엔 러시아 점령지가 포진해 있다. 이날 구호 현장에선 러시아군이 피난민들에게 총을 발포하기도 했다. 카호우카댐 부근 마을에서 대피한 류드밀라는 영국 BBC방송에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경찰관 2명이 러시아군이 쏜 총에 맞아 다쳤다. (러시아는) 우리를 폭사시키거나, 익사시키려 한다”며 울먹였다.

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장기적 '환경 재앙'

7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한 마을이 전날 카호우카댐 붕괴 여파로 거의 완전히 물에 잠겨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7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한 마을이 전날 카호우카댐 붕괴 여파로 거의 완전히 물에 잠겨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마을을 휩쓴 물이 흑해로 빠져나가면 치솟은 수위는 점차 낮아지겠지만, 장기적으론 더 큰 문제가 있다. ‘환경 재앙’이 닥칠 수 있어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댐 수력 발전소에 저장된 석유 150톤이 이번 홍수에 씻겨 내려가 그대로 방류됐다. 또, 저수지 바닥 퇴적물에 섞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잔여 오염물이 유출될 우려도 있다.

오스타프 세메라크 전 우크라이나 환경장관은 “각종 오염 물질이 흑해까지 떠내려 가서 루마니아와 조지아, 튀르키예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이번 사태는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최악”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검찰도 ‘에코사이드(생태 학살)’에 혐의를 두고 폭발 배후를 수사하고 있다.

지역사회 붕괴 위험도 있다. 댐 상류의 카호우카 호수는 우크라이나 남부 곡창지대의 ‘수원(水源)’이었다. 댐이 무너지면서 식수와 농작물 재배에 쓸 물을 잃게 된 셈이다. 게다가 이 호수는 유럽 최대 규모의 관개 시스템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 채소 생산의 80%를 담당하기도 했다. 실제로 댐 파괴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 곡물 가격까지 급등했다.

특히 ‘지뢰 위험’마저 닥치게 됐다. 드니프로강을 경계로 대립하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상대의 진격을 막기 위해 다량의 지뢰를 설치해 뒀는데, 이번 범람으로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뿔뿔이 흩어진 지뢰 때문에 재정착이 힘들 수 있다”며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농업과 목축업을 재개할 때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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