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 등이 한인 사업가 납치·살해
고위 간부 공모 의혹 등으로 재판 지연
범인 2명 무기징역… 간부는 무죄 판결
필리핀에서 한국 사업가 지모씨를 납치해 살해한 현지 경찰관과 정보원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필리핀 경찰청과 국가수사청(NBI) 정보원이 줄줄이 연루된 탓에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사건 발생 6년 만에야 비로소 법의 심판을 받게 됐지만, 정작 이를 지시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은 무죄로 풀려났다.
필리핀 앙헬레스 법원은 지씨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전직 경찰청 마약단속국 소속 경찰관 산타 이사벨과 국가수사청 정보원 출신 제리 옴랑에게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해당 범죄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이사벨의 상관이자 마약단속국 팀장을 지낸 라파엘 둠라오는 무죄로 판단했다고 필리핀 민영 ABS-CBN 방송은 전했다.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씨 납치·살해 사건은 2016년 10월 필리핀의 한 주거단지에서 일어났다. 한진중공업 임원을 지낸 지씨는 당시 53세로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사벨과 옴랑은 자택에서 지씨를 납치해 차량에 강제로 태운 뒤 경찰청 마약단속국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지씨의 신분을 위장해 시신을 화장했고, 유골은 화장실 변기에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의 사망 12일 후 가족들에게 몸값 약 500만 페소(약 1억 원)를 요구하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을 넘겼지만, 이후 소식은 끊겼다. 경찰 신고에도 소용이 없자 지씨의 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호소하면서 수사가 시작됐고, 이사벨의 자수로 진상이 드러났다.
두 주범뿐 아니라 경찰과 NBI 고위 간부가 조직적으로 납치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나오자 사건 다음 해 당시 대통령이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나서 엄중한 처벌을 약속했다. 그러나 관련 재판은 차일피일 밀렸고, 6년이 지난 이날에야 1심 판결이 났다.
남편의 유골조차 찾지 못한 지씨의 아내는 이날 판결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족은 범행 이유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실체 규명을 촉구했다. 수사당국은 지씨가 지역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갈취해 온 공무원에게 상납을 거부하다가 보복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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