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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하는 말레이시아... 'LGBTQ=질병' 법제화 50년 만에 재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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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하는 말레이시아... 'LGBTQ=질병' 법제화 50년 만에 재추진

입력
2023.06.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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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당 "질병 목록에 포함시켜야"
의료계 "우울증과 불안 키워" 반대
42% "찬성"… 동성애 배척 강해져

지난 2018년 6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린 성소수자의 날 행사에서 시위자들이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지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팜플로나=AP 연합뉴스

지난 2018년 6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린 성소수자의 날 행사에서 시위자들이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지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팜플로나=AP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에서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성소수자(LGBTQ+)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물론 의료계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침묵으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31일 말레이메일 등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인 범말레이시안이슬람당(PAS) 자말루딘 야히야 하원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신건강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그룹을 정신 질환자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주제는 ‘자살의 비범죄화’였는데, 그는 뜬금없이 주제를 이탈했다. 같은 당 하리마 알리 의원을 비롯해 이슬람계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성적 지향 문제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이슬람 문화권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사회 역시 성소수자에 배타적이다. 1973년 정신건강법에서 '동성애를 정신적 장애로 여긴다'는 내용이 삭제된 후엔 노골적 혐오는 다소 누그러졌다. 지난해 11월 연방의회 총선에서 PAS가 222석 중 49석을 차지해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의석을 확보한 후 혐오의 빗장이 다시 풀렸다. PAS가 성소수자 공격을 매개로 보수화를 시도하는 탓이다.

인권 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말레이시아 성소수자 단체 ‘제자카’의 디아 로하이자드 부회장은 “LGBTQ는 질병이 아닌 인간 다양성의 일부”라며 “정치권의 근거 없는 주장이 차별 낙인을 찍고 있다”고 반박했다.

말레이시아 의회 모습. 사진 좌측 상단에 현지 매체 뉴스트레이트타임스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타나 있다. 뉴스트레이트타임스 캡처

말레이시아 의회 모습. 사진 좌측 상단에 현지 매체 뉴스트레이트타임스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타나 있다. 뉴스트레이트타임스 캡처

의료계도 걱정한다. 임상 심리학자 추아 숙 닝 박사는 “동성애는 국제 통계분류에서 더 이상 정신 장애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제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삭제했고,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19년 정신질환 목록에서 해당 부분을 없앴다.

국립 말레이시아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도 “많은 연구에서 (성 정체성을 강제로 바꾸려는) 전환 치료가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고, 성소수자의 우울증과 불안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단체 성명을 발표했다.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성평등 단체 ‘여성들을 위한 정의’의 틸라가 술라시레 공동 창립자는 “잘못된 정보가 두려움과 불신을 불러오고 있다”며 “보건부 등이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최근 내무부가 무지개색이 성소수자(LGBTQ+) 옹호를 의미한다는 이유로 스위스 유명 시계 제조회사 스와치 시계 2,000만 원어치를 압수한 사례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방조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침묵 속에 말레이시아 사회의 동성애 혐오 정서가 확산될 조짐이다. 뉴스트레이트타임스는 “자말루딘 의원의 주장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더니 42%가 ‘동의한다’고 밝혔다”며 “국가의 LGBTQ 배척 정서가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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