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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다시 에르도안 시대... '30년 종신집권' 길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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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다시 에르도안 시대... '30년 종신집권' 길 텄다

입력
2023.05.29 20:00
수정
2023.05.29 23:03
1면
0 0

28일 결선 투표서 '52% 득표율' 승리 확정
재신임 에르도안 "'튀르키예 세기' 열렸다"
경제난·대지진 책임론 등 여러 난제 극복
"국내·대외 정책서 기존 노선 유지할 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9일 수도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대선 승리 발표 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앙카라=타스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9일 수도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대선 승리 발표 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앙카라=타스 연합뉴스

튀르키예에서 '에르도안 시대'가 계속 이어지게 됐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며 20년간 철권 통치를 이어 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 임기는 최소 5년 더 연장됐다. 중임 대통령이 조기 대선을 실시해 승리하면 추가로 임기 5년을 더 얹어 주는 헌법 규정을 감안하면 최장 10년 더 권좌를 지킬 수도 있다. 2003년 총리직을 꿰찬 이후 2033년까지 '초장기 집권'을 하게 되는 것이자, 현재 나이(69세)를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특히 값진 승리다. 오랜 경제난과 지난해 사상 최악의 물가상승, 지난 2월 대지진 책임론 등 각종 악재에도 예상을 뒤엎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자신의 지지층인 보수 이슬람 유권자를 결집시킨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10월 튀르키예 건국 100주년을 앞두고 쟁취한 대선 승리라 의미도 남다르다.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전 영역에서 자신의 기존 정책과 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3년 튀르키예 대선 득표율. 그래픽=김문중 기자

2023년 튀르키예 대선 득표율. 그래픽=김문중 기자


"튀르키예 세기 시작"... 승리 만끽한 에르도안

29일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최고선거위)에 따르면, 결선 투표 개표가 99% 진행된 상황에서 정의개발당(AKP) 후보로 출마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득표율 52.14%(2,751만3,587표)를 기록했다. 6개 야당 연합 후보로 출마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의 득표율은 47.86%(2,526만109표)에 그쳤다. 최종 집계 결과는 6월 1일 공식 발표된다.

이번 결선 투표는 지난 14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치러졌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의 득표율은 49.5%였다. 그러나 1차 투표 때 3위였던 승리당 시난 오안 대표(득표율 5.17%)가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 의사를 표명한 데다, 함께 실시됐던 총선에서 AKP 연합이 과반 의석(600석 중 323석)을 차지한 탓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종 승리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2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의 대선 결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2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의 대선 결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은 수도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승리 연설을 통해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에서 국민은 우리(AKP)에게 다시 임무를 맡겼다"며 "다 함께 '튀르키예의 세기'를 건설하자"고 강조했다. 연설 장소엔 지지자 30만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

'독재자 딱지'·'최악의 경제난'에도 권력 지켰다

사실 이번 대선은 에르도안 대통령 정치 인생에서 최대 난관이었다. 선거 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결과가 많았다. '에르도안의 시대'가 저무는 듯했다.

가장 큰 산은 사상 최악의 경제난이었다. 지난해 10월 튀르키예의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85%에 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이 닥쳤지만, 튀르키예는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다수 국가가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릴 때, 에르도안 대통령은 도리어 저금리 정책을 폈다. 게다가 경제난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다. 튀르키예 통화인 리라화 가치는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정치 이력. 그래픽=김문중 기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정치 이력. 그래픽=김문중 기자

'에르도안 당선=권위주의 강화'라는 인식도 극복해야 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년의 집권 기간 동안 헌법까지 바꾸며 권력을 무리하게 연장했다. 부통령 임명권·의회 해산권·국가비상사태 선포권 등 각종 권한을 움켜쥐고,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며 무소불위 권력이 됐다.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술탄에 빗대 그를 '21세기 술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보수층 공략 통했다... 기존 노선 강화할 듯

여러 난제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보수층 적극 공략'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그는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쿠르드족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부각시켰다.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에 배타적인 국민들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승리 연설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별다른 근거 없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테러리스트 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군사력 강화, 독자적 외교 노선 구축으로 '강한 튀르키예'가 되겠다"는 외침도 그의 주된 메시지였다. 동성애 등 소수자 혐오 시각을 드러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 대선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후 이스탄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 대선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후 이스탄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이에 더해 △가정용 천연가스 무상공급 △공공근로자 임금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도 쏟아냈다. 또 이미 언론을 장악한 터라,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한 보도가 많았던 것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심의 재신임'이라는 명분을 확실히 얻게 됐다. 이에 따라 기존 노선과 정책을 더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야당 등 반대 세력 탄압은 물론, 소수자와 난민 등에 대한 억압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승리 연설에서도 "튀르키예로 넘어온 시리아인들을 내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저금리 정책, 중앙은행 개입 등 비정통적 경제 정책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을 물리쳤다"며 "경제위기에 직면한 국내에서든, 서방 동맹들과 불화를 겪은 대외 정책에서든 진로를 바꾸겠다는 징후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짚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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