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불러 집들이 행사...마을회관 찾아가 인사도
"정치 다시 할 생각 있나" 질문에 극구 손사래
"지금 내가 말을 꺼내면..." 알 듯 모를 듯한 답변
지난 26일 경기 양평군의 한 이층집 마당. 마을 이장과 근처 백숙집 주인, 농협 관계자 등 주민 30여 명이 둘러앉은 소박한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서울서 이사 온 집주인이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집들이 자리였다.
이날 집들이의 주인공은 지난 3월 이곳에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온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아내와 둘이서 소박한 자연생활을 하고 있다. 2년 전 대구 수성구 아파트를 처분해 마련한 집이다. 이곳에 새로 둥지를 틀기 전까지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중간인 서울 마포에 살았다.
불쑥 찾아온 기자에게 김 전 총리는 "어떻게 알고 이 멀리까지 왔노"라고 가볍게 타박했지만 이내 막걸리를 따라줬다. 테이블을 오가며 부지런히 이웃들의 빈 잔을 채워주던 김 전 총리는 사람들 앞에 서서 "여기에 살러 내려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집 짓고 마당을 정돈하느라 얼굴은 검게 탔지만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은 여전했다. 팔뚝이 드러나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그는 귀촌을 한 여느 은퇴자처럼 보였다.
이웃들 모셔 집들이 행사... 마을회관 찾아가 인사도
행사가 파할 무렵 김 전 총리는 동년배라는 마을 이장과 함께 잔치 음식을 싸 들고 마을회관을 찾았다. 그곳엔 마당의 자리가 부족해서 다 모시지 못했다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일일이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로당에 언제 가입하느냐"는 한 노인의 질문에 김 전 총리는 껄껄 웃더니 "(나이) 앞에 '7자'가 들어가면 꼭 가입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는 올해 65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멀리 보이는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새로 칠한 하얀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창고를 앞으로 어떻게 채울지 설명하는 김 전 총리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원래 그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 낙향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수도권에 사는 딸들이 찾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곳에 집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현안 묻자 "지금 내가 말을 꺼내면..." 알 듯 모를 듯한 답변
그에게 넌지시 정치권과 더불어민주당 얘기를 꺼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폭풍전야다.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쇄신 경쟁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어서다. 민심을 얻기 위해 여권에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인들이 2선 후퇴 카드를 내밀 경우,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의 총선 불출마와 백의종군 선언을 통해 응수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돈다. 낙향한 김 전 총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꾸준히 거명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김 전 총리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민주당 쪽 인사 30여 명이 양평 집에서 회합을 가지기도 했다.
지난해 정계 은퇴의 뜻을 내비쳤던 그는 한사코 정치 얘기를 피했다. 김 전 총리는 “내가 지금 무슨 발언을 하게 되면, 앞으로도 쭉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이었다.
정계 복귀 의사 묻자 "얼른 차 빼라"
양평을 떠나기 전 김 전 총리에게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웃음을 띤 채 "얼른 차 빼라"면서 기자의 등을 떠밀었다.
김 전 총리는 극구 손사래를 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이름이 계속 호명된다. 중도 지향과 협치, 지역주의 극복 시도라는 김 전 총리의 궤적이 현 정치권에 결핍된 요소와 극명히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 정치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의 뜻에 따라 진퇴가 결정되는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김 전 총리가 촌부(村夫)로 남을지는 온전히 그의 뜻에만 달린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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