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서 스위스 쿠르틴 연구팀 발표
머리뼈·척추 사이 무선 디지털 연결해
환자 의지대로 다리 움직이게 도움
12년 전 교통사고로 척수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던 사람이 걷게 됐다. “걷겠다”는 뇌의 신호를 ‘무선 디지털 통신 장치’를 통해 하반신 근육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끊어진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를 다시 이어내면서다.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과학기술이 이뤄낸 현실이다.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의 그레구아르 쿠르틴 교수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은 연구 결과에서 뇌와 척수 간 신경을 ‘무선 디지털 브리지(Wireless digital bridge)’로 연결해 게르트-얀 오스캄(40)이 스스로 서고 걷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에 최소 100미터를 걸을 수 있고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거나 서서 술을 마시고 차에 타고 내릴 수도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척수가 손상되면 뇌와 몸 사이의 통신이 끊기며 마비로 이어진다. 이에 연구팀은 통신을 재개할 일종의 전자 통신망을 만들기로 하고 오스캄의 머리뼈와 척추에 전극으로 구성된 무선 기록 장치를 심었다. 엉덩이, 발목 등 하반신의 특정 부위를 움직이려 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파악한 연구팀은 오스캄의 '의도'를 전기 신호로 바꿨다. 이 신호가 척수에 연결된 전극에 무선으로 전달되면 하반신 근육에 운동 명령 신호를 보낸다. 정보와 신호 처리는 오스캄이 착용하는 헤드폰과 배낭 모양의 기기에서 이뤄진다.
이번 연구 결과가 혁신적인 것은 '외부의 자극'이 아닌 '마비자의 의도'에 따라 자발적으로 신체를 움직이게 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앞서 전류로 뇌를 자극해 마비된 이들을 다시 걷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태블릿PC 등으로 환자가 원하는 움직임을 선택하면 필요한 근육이 움직이는 방식이어서 동작이 제한적이었다. 2017년부터 다양한 자극 시술을 받은 오스캄은 “이전에는 자극이 나를 통제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스스로 제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육이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기 신호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뇌와 척추가 신호를 주고받는 횟수를 늘린 결과 그는 "건강해 보이는 보행"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오스캄이 무선 기록 장치를 심은 것은 1년 전인데, 장치를 끈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무선 통신이 신경 재생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미묘한 뇌의 의도를 전부 파악하기는 어려운 데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물리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연구팀은 NYT에 “처음엔 공상 과학소설 같은 생각이었지만 오늘은 현실이 됐다”며 “우리의 목표는 이 기술이 필요한 전 세계의 모든 마비자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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