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출판사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번역 출간
휴머니스트, 북펀드 통해 '프린키피아' 내놔
"인문학 기초인 고전 번역 부족한 현실, 후속 연구의 토대 희망"
역사 속 위인들이 시대를 건너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명은 '만학(萬學)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년), 다른 한 명은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전혀 다른 시대 위인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자연을 연구하며 인류를 진보시킨 대가라는 점. 또 다른 공통점, 그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쓴 책이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은 그의 저작집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하면 '그리스 철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인류 최초 생물학자이기도 하다. 그리스 에게해 레스보스 라군에서 500여 종이 넘는 새, 물고기 등 동물을 관찰해 저술을 남겼다. 약효나 요리법 같은 내용은 전혀 없다. 철저히 과학자의 시선으로 동물 운동의 원리를 기록했다. 선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대표작인 '형이상학', '시학' 외에도 그간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자연학', '동물부분론', '동물운동론'이 처음 번역돼 담겼다. 15개 주제를 망라한 책은 886쪽에 달하는 대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은 출판사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인문사회출판사 '길'은 돈은 안 되지만 가치 있는 교양·학술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을 기획하고 번역해 출간하는 데 걸린 시간만도 10년. 번역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김헌 서울대 강사 등 '소문난'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 5명에게 맡겨 내용의 질을 높였다. 이승우 길 기획실장은 "많이 팔릴 책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번역돼야 할 책이었다"며 "이번 선집이 생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독자 파워'가 고전을 만들기도 한다. 휴머니스트에서 최근 출간한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는 온라인서점에서 북펀드를 진행, 눈 밝은 '과학 덕후' 530명이 사전 구매하며 출판에 힘을 보탰다. 이어 대중적 수요가 뒤따르며 960쪽, 정가 6만6,000원짜리 고가 한정판이 출간 한 달여 만에 3,000부 완판을 앞두고 있다. 휴머니스트 관계자는 "공들여 제대로 만든 고전 번역서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독자 반응은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뜨거워 놀랐다"고 했다.
뉴턴이 1687년 출간한 '프린키피아'는 '과학계의 성서'로 불린다. 그는 '프린키피아'를 통해 지구와 사과 사이, 지구와 달 사이, 태양과 목성 사이 '인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히고 저 유명한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관성의 법칙을 결합해 '뉴턴의 운동 법칙'을 만들었다. '프린키피아'는 우주 법칙이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근대 과학의 문을 연 책으로 평가된다. 과학 독자들의 신뢰를 받는 이론물리학자 박병철 번역가가 완역에 성공했다. "현대 문명의 주춧돌이 된 고전역학의 원형을 소개하는 것은 종교인들이 경전을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게 그의 소감.
위인과의 만남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출판사 아카넷은 서양 문학의 '원류'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40년 만에 새로 번역해 낼 예정으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북펀드를 진행하고 있다. 아카넷은 토머스 홉스의 정치철학 3부작 중 첫 번째 저작으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법의 기초'도 6월 중 출간할 예정. 출판사 길은 르네 데카르트의 '음악입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을 준비 중이다. 이승우 길 기획실장은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고전 번역이 상당히 부족한 게 우리 현실"이라며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출간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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