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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 밀어낸 군산 홍어... "덜 잡아야 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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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 밀어낸 군산 홍어... "덜 잡아야 다 산다"

입력
2023.05.24 04:30
수정
2023.05.24 11:0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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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앞둔 '홍어 전쟁']
군산, 참홍어 주산지 흑산·대청 위협
어획량 제한 없어 생산량 1위 하기도
다른 지역처럼 군산도 어획 한도 적용

15일 오전 5시 전북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 참홍어 상자 700개가 깔려 있다. 군산=박경담 기자

15일 오전 5시 전북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 참홍어 상자 700개가 깔려 있다. 군산=박경담 기자

새벽노을이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한 15일 오전 5시. 전북 군산시수협이 운영하는 해망동위판장에 경매를 앞둔 참홍어 상자 700개가 깔렸다. 29톤 88영광호, 27톤 경남호가 뭍에서 80~160㎞ 떨어진 먼바다에서 일주일간 잡아온 것이다.

참홍어 암치·수치를 구분해 5㎏을 넘는 건 한 마리씩, 이보다 작으면 여러 마리로 20㎏을 채워 상자에 놓았다. 아직 삭히기 전이지만 참홍어만의 독특한 향이 은은하게 위판장을 감돌았다.

오전 6시 질 좋은 참홍어를 선점하기 위한 경매가 열렸다. 경매사가 "암치 9㎏, 세 상자" 식으로 목청을 높일 때마다, 경매상 20여 명은 원하는 가격에 사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군가 잠들어 있을 시간 '위판장 사람들'은 하루의 절정을 보내고 있었다.

흑산·대청 아성 깬 군산 참홍어

경매상들이 ㎏당 8,000~9,000원에 사들인 참홍어 대부분은 '군산 참홍어' 딱지를 붙여 서울 등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간다. 이렇게 군산 참홍어가 주목받은 건 불과 4년 전인 2019년부터다. 홍어 아성이던 전남 신안군 흑산도,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 군산이 도전장을 내민 것. "군산은 아직 흑산도 명성에 못 미치나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한 경매상 말마따나 신·구 참홍어 산지는 저마다 강점을 앞세워 부딪혔다. 서해를 달군 '홍어 1번지 전쟁'의 서막이었다.

일주일 동안 잡은 참홍어를 경매에 내놓고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 정박한 경남호. 군산=박경담 기자

일주일 동안 잡은 참홍어를 경매에 내놓고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 정박한 경남호. 군산=박경담 기자

군산은 오랫동안 홍어 불모지였다. "1970년대 초만 해도 고향인 군산 어청도에서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참홍어를 잡곤 했는데, 낡은 배로 수심 70~80m 먼바다로 가야 하니 사고가 많이 나서 다들 접었죠." 현재 군산에서 참홍어 어선을 이끄는 임세종 군산서해근해연승연합회장의 회상이다.

군산 어민들이 참홍어에 눈을 뜬 시기는 2010년 언저리다. 당시 군산 어선 가운데 먼바다 조업 배들의 주종목은 2m 간격으로 매달린 낚싯줄로 낚는 대구였다. 수심 10m 깊이에 많은 대구를 잡는 와중에 바다 바닥에 사는 참홍어가 간간이 걸렸다. 대구잡이 낚싯줄은 팔딱팔딱 힘 좋은 참홍어를 버티지 못해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돈을 들여 참홍어잡이용 어구로 바꿀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는 못했다.

2016, 2017년 대구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소득마저 쪼그라든 군산 어민들은 기로에 섰다. 서해 중앙 부근 유독 차가운 냉수대 해역에 모여 사는 대구의 개체 수가 그즈음 일시적 수온 상승으로 급감한 것이다. 군산 어선들은 궁리 끝에 기존보다 튼튼하고 굵은 낚싯줄로 장비를 바꿔 참홍어잡이에 나섰다. 수온에 따라 흑산도와 대청도를 오가는 참홍어를 잡기에 중간 지점인 군산 쪽 바다가 '명당'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군산 홍어 성장을 뒷받침한 것들

우리 해역까지 넘어와 참홍어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중국 어선에 대한 단속 및 처벌 강화도 긍정적이었다. 2001년 한중어업협정 초기 3,000만 원이었던 불법 조업 과태료 상한선이 1억 원(2011년), 3억 원(2017년)으로 뛴 2010년대 들어 참홍어 자원량이 늘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 덕에 흑산도와 대청도의 참홍어 생산량도 늘었지만 군산의 기세에 눌렸다. 군산이 위치한 전북의 참홍어 생산량은 2017년 4톤에서 2019년 224톤으로 56배 뛰었다. 같은 기간 흑산도, 대청도가 속한 전남(212톤→633톤), 인천(228톤→375톤)보다 월등했다. 급기야 2021년 군산이 1,417톤어치를 잡으면서 전남(1,004톤)을 누르고 참홍어 생산량 전국 1위를 거머쥐었다. 당시 전국 생산량(3,121톤)의 절반가량인 45.4%가 군산 참홍어였다.

흑산도, 대청도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군산이 참홍어를 잡아도 너무 많이 잡고 있다는 것. 군산이 참홍어의 '총허용어획량제도(TAC) 사각지대'임을 되새기는 일리 있는 문제 제기였다. 실제 참홍어를 쭉 잡아오던 흑산도, 대청도는 군산과 달리 2009년부터 참홍어 자원량을 유지하기 위한 TAC를 적용받고 있었다. TAC에 따라 매년 7월부터 이듬해 6월 어기에 흑산도, 대청도 어선이 잡을 수 있는 참홍어 양은 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군산은 아예 대상에서 빠져 참홍어를 무제한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홍어 전쟁' 종전을 위한 조건들

흑산도, 대청도는 정부에 "군산도 참홍어의 TAC를 적용해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했다. 이상수 흑산도 홍어연승협회장은 "흑산도나 대청도 어선은 TAC를 지키기 위해 참홍어를 한참 잡을 시기에 배를 묶는 경우가 많았고, 시장에 풀린 군산 홍어 때문에 가격 하락도 감수해야 했다"고 푸념했다.

결국 올 7월부터 참홍어 TAC가 서해 전역에 실시된다. '홍어 1번지 전쟁'이 종전을 향해 가는 셈이다. 다만 마지막 장애물이 남아 있다. 흑산도, 대청도, 군산의 참홍어 어선에 TAC 물량을 어떻게 나눌지다. 해양수산부는 국립수산과학원의 참홍어 자원량 평가를 토대로 최근 3년 어획량, 어선 규모를 고려해 관련 시·도에 TAC 물량을 할당한다. 어선별 TAC 물량 배정은 시·도 권한이다.

15일 전북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서 경매로 팔린 참홍어. 군산=박경담 기자

15일 전북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에서 경매로 팔린 참홍어. 군산=박경담 기자

후발 주자 군산은 흑산도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어선별 TAC 물량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세종 회장은 "군산 참홍어 가격은 타 지역 절반에 못 미칠 때도 있다"며 "타 지역 어선의 연간 TAC 물량이 80톤이라면 우린 100톤을 받아야 기존 소득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존 주자들은 새로 TAC 대상에 편입된 군산의 물량은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 대청도에서 참홍어 어선 7척을 대표하는 노진석 선장은 "이전에 참홍어 어선이 신규로 TAC 대상이 되면 처음엔 적은 물량을 받았다"며 "군산에서 많이 잡기 시작하면서 참홍어 단가가 떨어진 걸 감안해서 TAC 물량을 조절해야 다른 지역도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군산=글·사진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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