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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영인 만들기'에 대한 통제가 시급하다

입력
2023.05.17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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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비용부담, 해고제한 꺼리는 기업
무한경쟁 방치하는 플랫폼 노동
폭주 막는 법과 시민의식 필요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겁니다. 우린 승선이라고 해요.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고용 기사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가 되죠. 계약 같은 거 없고 목표 실적도 없어요. 배송 기준만 지키면 돼요. 임금은 없지만 수수료를 받고요. 출근 카드 같은 거 없고 알아서 일합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죠. 전사만 살아남아요."

영화 '미안해요 리키' 중 택배 회사 매니저의 설명이다. 두 자녀를 둔 리키는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실직하고 택배 일을 시작한다. 아내 애비 역시 간병 돌봄 서비스를 한다. 리키는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페트병에 소변을 보고 다쳐도 쉬지 못한다. 리키와 애비는 하루 14시간씩 일하지만 갈수록 불행해진다. 회사는 일체 도움을 주지 않는다. 리키와 애비는 자기 운명의 주인인 사업주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만들어 사용하는 특수고용방식까지 다양한 형태로 고용이 확산했고,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이 이슈로 떠올랐다. 기업이 '위장 자영인화'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이유는, 각종 비용이나 책임부담, 해고의 제한 등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우리 법과 제도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근로자만 보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이 아무리 근로자성을 넓혀도 법해석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2013년 배달원이 다친 사건에서 1, 2심 판결을 뒤집는 대법원의 파기환송심(2016두49372)을 거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인정되기까지 5년이 걸린 사례처럼, 재판은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픽=김문중기자

그래픽=김문중기자

플랫폼 노동의 형태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크게 호출형(퀵서비스·음식배달), 관리형(가사·돌봄·청소), 중개형(디자인·프로그래밍·번역 등 전문 프리랜서), 전시형(만화·소설·영상 등 전시-유튜브·웹툰·웹소설)으로 나뉜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배달·배송·운전 직종에 51만3,000여 명, 가사·청소·돌봄 직종에 5만3,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1년 8월께에는 종사자가 220만 명(전체 취업자의 8.5%)에 달하기도 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진입장벽이 없어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일감 대기시간 같은 비가시화된 노동이 무급으로 사라진다. 노동시간과 소득이 불규칙해 노동 관련 법령을 적용하기 어렵고, 사업장 중심인 사용자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업무상 상해나 손실도 자기 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 문제는 전 세계적 이슈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다이나멕스(Dynamex) 배달기사들에 대해 'ABC 테스트'(근로자로 볼 수 없는 세 가지 사항을 사용자가 증명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추정하는 제도)를 적용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9년 주 의회가 이 판결을 입법화하자 플랫폼 기업들은 주민발의안으로 법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은 2021년 8월 입법권 침해를 이유로 주민발의안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우리도 캘리포니아처럼 근로자성을 추정하는 법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그나마 2023년 7월 1일부터는 산재보상보험법이 개정돼 약 63만 명의 특고 및 플랫폼 종사자가 추가로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이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단 한 명의 노동자를 구제한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성과다.

기술과 돈은 서로 밀고 당기며 급발진하고, 그 질주에 무수한 사람들이 다친다.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다. 기술과 돈의 폭주에 맞설 힘이 법에 있다. 법보다 더 중요한 건 리키 같은 이들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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