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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1000조를 맡겼다… 그런데, 전문가가 없다

입력
2023.05.17 15:00
수정
2023.05.17 15:5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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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노후자금 국민연금 운용의 민낯
기금위·전문위·집행기구 총체적 문제

적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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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작년 80조 원 날렸다.’

3월초 화들짝 전해진 뉴스 헤드라인이다. 국민연금이 작년에 역대 최저인 마이너스(-) 8.22% 수익률을 기록하며 80조 원 가까운 손실을 냈다는 소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도 -0.18%에 그쳤으니 충격적인 수치이긴 했다. 오죽했으면, 감사원이 후다닥 감사에 나섰겠는가.

그런데 사실 한해 수익률만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그리 적절치는 않다. 글로벌 시장이 안 좋으면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작년엔 서로 보완 관계인 위험자산(주식)과 안전자산(채권)이 동시 하락하는 기현상도 수익률 하락을 부채질했다. 노르웨이 연기금(-14.1%)이나 네덜란드 연기금(-17.6%)은 우리보다 더 나빴다. 올 들어 빠르게 시장이 회복되자 3개월여 만에 작년 손실분을 거의 만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관심 갖고 봐야 할 건 중장기 수익률이다. 3월말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내놓은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는 기금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면 연금 고갈 시점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담겼다. 연금개혁 없이 현 제도대로라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인데, 수익률 기본 가정치가 연 4.5%다. 그런데 이보다 수익률을 1%포인트 끌어올리면 2060년으로 5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수익률을 0.5%포인트 높이는 경우 소진이 2년 늦춰진다. 현재 국민연금의 누적 연 환산 투자수익률은 5.11%다. 캐나다 연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이 10.8%라고 하니, 잘만 굴리면 소진 시점을 5년, 아니 10년 이상 늦추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미투자자들은 돈 몇 백만, 몇 천만 원을 투자하고도 하루 종일 가슴을 졸인다. 국민연금은 1,000조 원 가까운 돈을 굴린다. 온 국민의 노후가 달린 몹시 중요한 투자다. 엄청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돈을 굴릴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 방안에 관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 방안에 관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수익률 9할을 책임지는 조직, 기금운용위원회

국민연금 가입자는 1월말 현재 2,232만 명이다. 이들의 소득에서 매월 꼬박꼬박 9%(사업장가입자는 회사와 본인이 각 4.5%)씩 낸 보험금이 1988년 1월부터 차곡차곡 적립됐다. 그렇게 쌓인 돈이 2월말 기준 939조 원이다. 작년 손실을 빠르게 만회해 3월말에는 970조 원 수준까지 올랐을 거라고 한다. 수급자가 630만 명을 넘어 매월 2조9,000억 원 가까운 연금이 지급되지만, 당분간은 쌓이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더 많다. 정점을 찍는 2041년엔 1,80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 돈을 금고에 쟁여둘 리는 만무하다. 가계가 소득이 생기면 지출하고 남은 돈을 저축하거나 투자를 하듯,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굴리는 돈의 단위가 다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들이 이 막대한 돈을 굴리느냐다. 조직구조를 보면 이렇다.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다. 그 밑에 실무평가위원회와 3개 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 투자정책위, 위험관리·성과보상위)가 전문성을 보좌한다. 그리고 실제 돈을 굴리는 집행기구인 기금운용본부가 있다.

돈을 굴리는데 의사결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두말이 필요 없다. 그 역할을 기금위가 한다. 가장 큰 의사결정이 전략적 자산배분(SAA)이다. 투자할 자산군을 정해서 최적의 배분 비중을 결정하는 일이다. 가계로 예를 들어보자. 여유자금이 5억 원이 있다면 부동산에 얼마를 투자하고, 주식을 얼마나 살지, 펀드와 예금에는 분산을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하는 역할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SAA 단계에서 수익률의 9할 이상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국내 주식에 20%를 투자하겠다고 결정을 해도, 어떤 주식을 사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천차만별 아닌가요?’

남 연구위원은 “그게 개인투자와 기관투자의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한다. “개인들은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운영하지 않잖아요. 몇몇 종목에 집중 투자를 하니 종목이 중요할 수밖에 없죠. 기관은 그렇지 않아요. 위험을 분산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죠.” 그렇게 기금위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기금운용본부 운용역들이 돈을 굴리는데, 실제 집행 단계에서 결정되는 수익률은 1할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수익률이 10%가 났다면 기금위가 9%포인트, 기금운용본부가 1%포인트를 기여했다고 보면 된다는 얘기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국민연금관리공단. 배우한 기자

서울 송파구 신천동 국민연금관리공단. 배우한 기자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전문가가 없다

이 막중한 역할을 맡은 기금위의 위원은 20명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전문가가 없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도대체 구성이 어떻길래 그런 걸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정부 부처 차관과 국민연금 이사장 등 5명이 당연직 위원, 그리고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가 각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이다. 한 명씩 짚어보자.

우선 위원장부터 논란이 있다.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라고는 하지만, 돈을 굴리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꼭 정부 부처 장관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면 금융위원장이 적격이다. 복지부 장관이 수익률을 높이는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복지 쪽 인사가 장관을 할 때는 그나마 낫다”며 “보건 전문가가 장관을 하는 시기에는 회의를 이끌어나갈 수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꼭 부처 장관이 위원장이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도 했다.

당연직 위원은 또 어떤가. 국민연금 이사장이야 그렇다 치고, 4명 정부부처 차관의 면면을 보자.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차관이 당연직이다. 농업정책에, 또 노동정책에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이들이 투자에 대해 똘똘한 개미보다 더 잘 안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용자와 근로자, 지역가입자 대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용자 대표는 경제단체(경영자총협회, 상공회의소, 중기중앙회) 임원이고, 근로자 대표는 한국노총과 공공노조 임원이다. 대표로서의 상징성만 있을 뿐이다. 지역가입자 대표들도 농협과 수협, 공인회계사회, 소상공인연합회,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한 이들인데, 금융쪽 인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관계 전문가 몫이라는 2명도 국책연구원(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일 뿐이다.

물론 대표성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입자 특성에 따라 같은 수익률이라 해도 단기, 중기, 장기 등 추구하는 기간이 다를 수 있고, 수익률과 위험성의 안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표성을 택한다고 해서 전문성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다. “가입자 단체에서 대표자를 추천할 때 너무 무책임하게 보직자들만 추천한다. 추천 조건에 전문성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정책위원장)는 지적에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있는가.


대놓고 불참하는 당연직, 몰라서 찬성만 하는 위원들

작년에 기금위는 모두 6차례 열렸다. 그런데 차관급 당연직 4명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기재부는 그나마 3차례 차관보나 국장급이 대리 참석했고, 산업부는 대리 출석이 딱 한 번 있었다. 농식품부와 고용부는 아예 대리인조차 회의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우리도 왜 기금위에 차관이 당연직으로 들어가있는지 모르겠다”는 모부처 간부의 말이 솔직하다. 그러니 “전혀 당연하지 않은 당연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심지어 위원장도 불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6차례 회의 중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것은 딱 두 번이다.

그러니 재적위원 과반수인 의사정족수를 간신히 채워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2차 회의엔 12명이, 5차 회의는 11명이 참석했다. 그나마 실무진이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다.

민간기업의 이사회를 거수기라고 비판하는데, 기금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통계이긴 하지만 2005~2016년 기금위에서 심의∙의결된 안건이 총 143건인데, 재심의 안건은 단 3건에 그쳤다.

거수기가 되는 이유는 민간기업과는 조금 다르다. 민간기업은 경영진과의 밀착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금위는 내용을 몰라 어쩔 수 없이 찬성만 하는 거수기가 된다. 정도진 교수의 진단이 그렇다. “저는 회계전문가예요. 관련 안건이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죠. 대안도 제시를 할 겁니다. 그런데, 대표성만을 강조한 위원들이 그런 전문성이 있을 리 없잖아요. 결국 밑에서 올라온 안건 보고를 그대로 추인하는 역할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위원 수가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도 있다. 전광우 이사장은 “위원이 20명이다보니 한 마디씩만 해도 1시간이 훌쩍 넘어간다”며 “금리 결정을 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제대로 된 전문가 7명 안팎으로 압축해야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회의는 매우 형식적이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 회의인데, 짧게는 1시간, 보통은 2시간 안쪽에서 끝난다.


전문성 서포트 조직조차 전문성 논란

이런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9년 10월 열린 기금위에서는 ‘기금위 운영개선방안’이 보고됐다. 당시 박능후 복지부 장관(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국민연금기금의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금운용에 대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때 도입된 것이 상근전문위원 제도다. 가입자단체(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추천으로 1명씩 3명이 임명되는데, 안건 작성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기금위의 전문성을 보좌한다는 취지다. 기금위 산하 3개 전문위원회를 국민연금법 시행령에 법제화한 것도 이때다. 상근전문위원 3명은 3개 전문위에 모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임기 3년 중 1년씩 돌아가며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그런데 3월 검사 출신 한석훈 변호사가 상근전문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용자 단체 추천으로 선임이 됐는데, 그의 전문 분야는 상법과 기업 관련 범죄로 연금 분야의 전문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당은 논평에서 “전직 검사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맡게 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복지부는 "법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즉각 해명했다. 국민연금법 시행령은 상근전문위원의 자격을 ‘금융, 경제, 자산운용, 법률 또는 연금제도 분야의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했던 사람’으로 규정한다. 5년 이상 법률 분야 업무에 종사했으니 법이 정하는 자격 요건을 갖춘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항변이 더 우습다. 남재우 연구위원은 “기금위 전문성을 보조하기 위한 자리라면 누가 봐도 탁월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앉히는 게 도리”라고 했다. 자격 요건을 간신히 갖췄으니 문제없다는 건데, 이럴 거면 전문위원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수익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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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역이 등 돌리는 기금운용본부

집행기구인 기금운용본부는 문제가 없을까. 애석하게도 평가는 부정적이다. 당장 내부에서부터 불만이 부글부글 끓는다. 운용역들은 전북 전주로 이전한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살기도 어렵고, 경쟁력을 갖추기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실제 전주로 이전한 2017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국민연금을 떠난 운용역은 164명에 달한다. 현재 운용역(319명)의 절반을 넘는다. 100% 전주 이전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네트워크가 중요한 부동산, 인프라, 사모투자 등 대체투자 인력이 많이 떠나는 건 지역적 한계를 느낀 탓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전광우 이사장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좋은 취지이지만, 그 지역사회에 정말 보탬이 되고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는 기관을 선정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한다.

밖에서는 운용역들 간에 경쟁 유인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거대기금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다 보니 아무래도 느슨하다는 것이다. 분할을 통해 수익률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래서 나온다. 스웨덴은 2001년 조직을 5곳으로 쪼개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도진 교수는 “더 이상 하나의 운영주체에 맡겨선 안 된다. 운용역 이탈도 분할을 통한 경쟁 구도에서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금을 소규모로 쪼개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기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기금 운용에서 이리저리 정치에 휘둘린다는 비판도 많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공사화를 통해 독립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금의 사용 측면(복지)과 운용 측면(금융)을 분리해야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 수익률에 확실히 초점을 맞출 수 있다”(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것이다. 네덜란드나 노르웨이 연기금도 공사화를 했다. 오건호 위원장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조정하는 연금개혁이 미룰 수 없는 과제이지만, 연금 운용 또한 과감하게 손을 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국민연금공단 제공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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