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건전지 수거함에 들어간 것만 일부 재활용
현행 법령상 재활용 대상에 편입 안 된 상태
#경기 용인시 소재 아파트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46)씨는 분리배출을 하던 도중 고민에 빠졌다. 휴대폰 충전을 위해 사용하던 1만 밀리암페어시(㎃h·1암페어(A)의 전류가 한 시간 동안 흘렀을 때 전기량을 뜻하는 암페어시의 1,000분의 1) 용량의 보조배터리가 망가져서 처분해야 하는데 어떤 항목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해 보니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는 듯했고, 폐건전지 수거함에 버리면 재활용업체가 수거해서 처리하는 것 같았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주택에 살고 있는 주부 송모(47)씨도 2만 ㎃h 용량의 보조배터리 처분을 두고 박씨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모으는 곳에 버렸다. 송씨는 “보조배터리는 플라스틱 재질이 감싸고 있는 데다, 플라스틱 제품들을 수거하는 업체는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으니 적당한 항목으로 추가 분류해 재활용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동칫솔, 전자담배 등 일상 파고든 2차전지
휴대폰, 노트북뿐 아니라 전기자동차, 조명, 전동칫솔, 궐련형 전자담배 등 일상에서 2차전지가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데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어 유럽연합(EU)판 IRA라고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이 발표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해 특히, 2차전지에 쓰이는 리튬 등 자원을 재활용하는 건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 중론이다.
배터리는 1차전지와 2차전지로 분류된다. 1차전지는 화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는 횟수가 1회로 충전이 불가능한 전지로, 건전지를 생각하면 된다. 2차전지는 방전된 상태에서 전기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시 화학에너지로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할 수 있는 전지를 뜻한다.
최근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난 건 2차전지다. 삼성SDI나 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이 주로 전기차에 사용되는 2차전지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어 개발 및 생산에 힘을 쏟기 시작한 지 오래다. 이들은 전기차에 사용된 대형 폐배터리 재활용에도 적극적이다.
단순 폐기되거나 일부만 회수·재활용돼
하지만 충전용 보조배터리 등 각종 일상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중·소형 2차전지들과 관련해 생산자의 회수·재활용 의무, 재활용 방법과 기준 등이 법령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 단순폐기되거나 일부만 회수·재활용되고 있다.
대형 아파트 단지의 폐건전지함 같은 곳에서 수거되는 소량을 제외하면 보조배터리 등은 단순 일반 쓰레기로 취급받고 있다. 오히려 압력이나 충격에 취약해 재활용품 분류 작업 과정에서 화재를 유발하는 위험 요소로 평가돼 사전 제거 대상으로 다뤄진다.
서울 도봉구의 자원순환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김현수 ACI 대표는 “요즘 전자담배나 1회용 전자담배 등 어디에 배터리가 들어갔는지 알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많아 제대로 분리수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버려진 배터리들은 분류 작업 과정에서 화재의 원인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실제 2020년 환경부 의뢰로 한국환경공단이 수행한 ‘2차전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 및 전지류 재활용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리튬계 2차전지 폐기물 발생량은 2019년 809톤, 2020년 817톤에 이른다. 2025년에는 874톤, 2030년에는 913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공단은 전망했다.
재활용된 폐배터리는 2019년 34톤(4.2%), 2020년 106톤(13.5%)에 불과하다. 적정 회수 체계 등이 갖춰질 경우 2025년 245톤(28%), 2030년 402톤(44%)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공단 예측이다.
은·리튬 등 포함돼 재활용 가치 높아
전문가들은 이들 배터리 속에 들어간 금속류만 제대로 재활용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리튬계 2차전지 폐기물에는 은, 리튬 등 유가금속(값어치가 있는 유색금속)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박사’로 불리는 재활용 전문가인 홍수열 자원순환사회 경제연구소장은 “폐배터리는 재활용할 경우 가치가 높은데, 아직 임시방편으로 폐건전지 수거업체들이 모아서 재활용하는 수준”이라면서 “휴대폰에 포함된 배터리처럼 EPR 적용대상에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때 기념품 등으로 많이 보급된 보조배터리는 한시바삐 재활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충전용 보조배터리 등의 재활용을 위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환경부는 2020년 경남 창원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존 폐건전지 분리수거함에 충전용 보조배터리도 함께 배출하는 시범사업을 4개월간 추진했지만 후속 조치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충전용 보조배터리 등을 EPR 적용 대상으로 편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행 법령이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전기·전자제품및자동차의자원순환에관한법률)과 자원재활용법(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 등 이원화돼 있고, 대상 품목도 다양해 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