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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 버라이어티 예능이 되다

입력
2023.04.30 12: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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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마블의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에 우주 생명체의 절반이 사라진다. 황당하지만 타노스는 외계인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걸 어벤저스가 막아내고 되돌리기까지 한다. 너무나 지구 중심적이며, 천동설의 현대 버전인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창의(?)적이지 않은가!

더 놀라운 건 어벤저스 '엔드게임(2019년·1,397만)', '인피니티 워(2018년·1,121만)',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년·1,049만)'의 국내 관객 수가 무려 3,500만 명이 넘는다는 점. 즉 말은 안 되지만, 압도적인 대중성만은 확실했다는 것이다. 비단 마블이나 DC만은 아니다. MMORPG 게임이나 최근의 OTT 시장 확대에서, 현실적인 콘텐츠는 급격히 매력을 상실하고 있다. 신주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 주술이라고 하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현대에 와서 화석 같은 주술들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주술은 미개 문화 속에서, '강력한 힘에 대한 추구'와 '보호받으려는 인간 속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주술성은 신(神) 중심에 도전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추구한 '축의 시대(Axial Age, BC 800∼BC 200)'에 극복된다. 이때의 영웅들이 오늘날까지 성현이라 불리는 붓다·공자·노자·소크라테스·플라톤 같은 이들이다. 이후로 엎치락뒤치락하지만, 르네상스부터는 합리성에 따른 과학의 발전이 인류문명을 견인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주술이 깨어나고 있다. 현대의 주술성은 오히려 선진국을 중심으로 강하게 작동하는 모양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게임과 만화를 제외한 콘텐츠들은 대부분 합리성에 기반한 '기발한 반전' 범주에 불과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2010년 이후에는 말이 안 되는 주제가 대놓고 횡행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콘텐츠 시장의 과열로 자극과 재미의 강도가 세진 측면 및 웹툰 등의 유입이 한몫했다. 여기에는 또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합리성이 강조되자,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비규정성이 새롭게 대두한 측면도 존재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위협적일 때, 우리는 도시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도시가 발달하고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규격성이 지배하게 되자, 이제 인간은 오히려 도시에서 탈출해 자연을 추구하게 된다. 즉 인류문명의 발달이 신주술의 반향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은 유사 이래로 '현상을 그대로 어떻게 묘사할 것이냐'에 치중했다. 그러나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현실의 복제는 더 이상 미술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때 미술계는 대상에 대한 묘사라는 객관성이 아닌, 인상과 추상이라는 주관성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게 된다. 우리 역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주관성에 따른 미학적 판단이 강조되고 있다. 명품의 소비 증가 또한 가성비라는 합리성을 넘어서는 미학적인 관점에 다름 아니다. 또 여기에는 자신을 부각하려는 특수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미학과 연결되는 코드가 바로 주술성이다.

먹고살기 힘들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경제가 안정되면 자신을 드러내고 부각하며 특수화하는 쪽으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인스타나 페북 등은 자신을 드러내려는 시대변화를 잘 나타내 준다. 이러한 개인성을 관통하는 키워드에 주술이 있는 것이다.

다만 과거의 주술이 장희빈이 인현왕후의 그림에 활을 쏜 것 같은 무지의 믿음이었다면, 현대의 주술은 스타벅스의 사이렌 로고처럼 재미와 흥미를 타고 흐르고 있는 차이를 보인다. 진지함보다는 다양성에 따른 자유로움. 그리고 디자인과 결부된 개성이 현대의 주술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주술이 다큐였다면, 현대의 신주술은 버라이어티 예능인 셈이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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