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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사기꾼’ 아니면 뭔가

입력
2023.04.24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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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윤 대통령 ‘거짓 선동과 날조’ 맹비난에
야당 “통합 대신 대결 선택” 잇단 반발
‘정치 사기’ 나라 망칠 정도 된 게 현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회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회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4ㆍ19혁명 기념사에서 “4ㆍ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한 대목이 파장을 낳고 있다.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많이 봐왔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며 한 말이다.

현장에서 표정이 굳었던 것으로 전해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하루 지난 20일 “대통령 공식 기념사에서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며 “그 말에 우리 국민들께서 느끼셨을 자괴감이 참으로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대변인도 “야당과 언론을 가짜뉴스, 선동꾼으로 매도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위협하는 사기꾼이라고 칭하고 싶은 거냐”며 반발했다.

윤 대통령의 연설이 적어도 포용과 통합보다는 대결적 분위기였다는 점을 우려하는 여론 또한 만만찮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대통령의 거센 표현이 유발한 다소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내 정치현장에 국민을 속이는 정치적 ‘사기꾼’들이 건강한 공론 형성을 위협할 정도로 판치고 있는 게 요즘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본다.

실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잣거리 야바위꾼들한테 뻔히 알면서 농락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겪고 있다. 굳이 말을 안 하니 온 세상이 대충 속아 넘어간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애써 꼽아 본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월 24일 울산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등과 함께)미래차, 수소차 등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부분(조특법 개정안)이 곧 본회의를 통과할 예정인 만큼,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조특법 개정에 자신과 민주당이 앞장섰음을 과시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열린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토론회’에선 “정부는 초부자감세,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몇 개 안 되는 기업들에 대해선 세금을 깎아주고, 취약계층 대출엔 무려 15.9%의 초고금리 이자를 부과했다”고 규탄했다. 여기선 조특법 개정에 앞장섰다고 자랑하고, 저기선 그걸 두고 정부가 ‘초부자감세’했다고 욕하는 깜찍한 기만행위를 거리낌 없이 한 셈이다.

‘사기언행’이 정부 내에도 버젓이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그는 비밀문서 유출로 미국 도ㆍ감청 의혹이 제기되자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거나 “미국의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는 등 국민을 상대로 거짓과 요령부득의 어불성설을 되풀이함으로써 정부 신뢰도를 크게 훼손했다. 현실적 필요에 따른 외교적 레토릭의 선을 넘은 김 차장의 행태는 정부 고위직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대국민 사기다.

국민을 속이고 오도하는 정치와 권력의 ‘사기’가 어디 이뿐이랴. ‘법꾸라지’ 언행 같은 건 개인적 일탈이라 쳐도, 국정에 대한 거짓 선동과 날조가 경제정책은 물론 외교사안에까지 무분별하게 판치면서 우리 스스로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는 중국 관영매체의 방자한 논평을 자초하기에 이른 것만 봐도 그렇다.

한때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바이마르공화국이 히틀러라는 괴물에게 허무하게 붕괴된 원인 중 하나는 지식인들의 방관과 침묵이었다. 지금도 민주주의는 ‘사기꾼’들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끊임없이 훼손되고 위협받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정치판의 ‘사기꾼’들을 더 이상 방조하면 조만간 망국병으로 고질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차제에 정치판의 '사기 언행'을 수시로 적시하고 걸러내는 사회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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