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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생했어”.. 보스턴 마라톤 빛낸 리트리버에 보내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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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생했어”.. 보스턴 마라톤 빛낸 리트리버에 보내는 헌사

입력
2023.04.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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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에서 공식 경주견으로 인정받은 골든 리트리버 품종 '스펜서'와 '페니'의 생전 모습. 두 강아지는 지난 2월 악성 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스턴 마라톤 페이스북

보스턴 마라톤에서 공식 경주견으로 인정받은 골든 리트리버 품종 '스펜서'와 '페니'의 생전 모습. 두 강아지는 지난 2월 악성 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스턴 마라톤 페이스북

지난 16일, 미국 보스턴 시의 공원 ‘보스턴 커먼’(Boston Common)에 250여 마리의 반려견이 모였습니다. 이 곳에 모인 개들은 모두 골든 리트리버 품종 반려견이었습니다. 수많은 강아지들이 공원에서 보스턴 마라톤 종점까지 걷는 모습은 매우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현지 매체 보스턴닷컴이 “금빛 미소의 물결”(Sea of golden and smiling faces)라고 소개할 정도였으니까요. 모임을 주관한 골든 리트리버 보호자 모임 ‘매사추세츠 골든 밋업스’(MA Golden Meetups)의 엘리샤 부시에르 공동대표는 “이 정도로 많은 강아지와 보호자들이 참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6일, 미국 보스턴 시의 공원 보스턴 커먼에 모인 골든 리트리버 품종 반려견들의 모습. 이들은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보스턴 마라톤의 공식 견공인 스펜서와 페니를 기리기 위해 모였다. NBC10 페이스북

지난 16일, 미국 보스턴 시의 공원 보스턴 커먼에 모인 골든 리트리버 품종 반려견들의 모습. 이들은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보스턴 마라톤의 공식 견공인 스펜서와 페니를 기리기 위해 모였다. NBC10 페이스북

미국 일간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CBS, NBC 등 현지 매체들은 제127회 보스턴 마라톤을 하루 앞두고 열린 이 대규모 골든 리트리버 모임을 소개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 행사는 보스턴 마라톤 공인 경주견(Official Race Dog)이었던 ‘스펜서’(Spencer)와 '페니'(Penny)라는 골든 리트리버 품종 개를 추모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스펜서는 지난 2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펜서와 페니는 지난 2015년부터 보스턴 마라톤 현장에서 매년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라는 깃발을 물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장거리 레이스에 지친 러너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매 대회마다 자리를 지키는 스펜서를 알아보는 러너들이 생길 정도였죠. 보스턴 마라톤의 치어리더를 자처한 스펜서는 지역사회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도 큰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대회를 앞두고는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원회에서 스펜서와 페니를 마라톤 공식 경주견으로 공인할 정도였죠. 보스턴 마라톤 이외에도 스펜서와 페니는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는 열혈 치료견이었다고 합니다.



스펜서와 페니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러너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깃발을 들고 응원했다. 보스턴 마라톤 페이스북

스펜서와 페니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러너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깃발을 들고 응원했다. 보스턴 마라톤 페이스북

그러나 행복도 잠시, 스펜서에게 간암이라는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스펜서는 2020년 한 차례 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하게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족들은 이번에도 스펜서가 곧 건강하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행운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에서 스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바람을 뒤로 하고 스펜서는 지난 2월17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단짝이었던 스펜서를 혼자 보낼 수 없었던 것인지, 페니 역시 스펜서가 죽은 뒤 불과 8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페니 역시 비장에 종양이 발견되었고, 체내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목숨을 잃은 뒤 알려진 페니의 병명은 ‘혈관육종’이라는 불치의 암이었습니다.

1주일 사이에 두 반려견을 모두 잃어야 했던 가족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스펜서와 페니의 보호자 리치 파워스(Rich Powers) 씨는 당시 “망연자실이라는 말 이상으로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파워스 씨는 페니를 떠나보낸 뒤 “스펜서와 함께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프리스비와 공을 가지고 놀고 있기를 바란다”며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골든 리트리버 보호자들이 특별히 보스턴 마라톤 하루 전에 대규모 모임을 기획한 이유는 단순히 스펜서와 페니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이들은 스펜서와 페니가 들고 있었던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깃발을 판매하면서 3만2,000달러(약4,217만원)를 모금했습니다. 매사추세츠 골든 밋업은 모금액을 반려견 암을 비롯한 동물 질병 연구를 위해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시에르 대표는 “이것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라며 “우리는 함께 모이면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며 사람들의 선의에 감격했다고 밝혔습니다. 파워스 씨 역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임에 참여한 반려견들의 사진을 올리며 “스펜서와 페니를 향한 찬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그들은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펜서와 페니가 떠난 뒤에도 그들의 보호자인 리치 파워스 씨는 지난 17일 열린 레이스 현장에서 러너들을 응원했다. 스펜서와 페니가 지키던 그 자리에 서서. 스펜서&페니 페이스북

스펜서와 페니가 떠난 뒤에도 그들의 보호자인 리치 파워스 씨는 지난 17일 열린 레이스 현장에서 러너들을 응원했다. 스펜서와 페니가 지키던 그 자리에 서서. 스펜서&페니 페이스북

17일 열린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파워스 씨는 스펜서와 페니를 대신해 레이스 현장에서 ‘보스턴 스트롱’ 깃발을 들고 러너들을 응원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 조직위원회는 파워스 씨를 특별 게스트로 초청해 출발선 혹은 결승선에 설 수 있게 배려했지만, 그는 정중히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스펜서와 페니가 러너들을 응원하던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 역사에 남게 될 두 반려견이 하늘에서도 행복하게 이 모습을 지켜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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