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각해 대만 독립 반대해야" 언급
야당 "인질범의 발언... 즉각 추방을" 주장
대통령 "대만 체류 근로자 돌보라" 지시
“필리핀이 대만에서 일하는 15만 명의 필리핀 노동자를 생각하면 대만 독립을 명백히 반대하는 게 좋다."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의 이 같은 발언이 필리핀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이 필리핀 국민 안전을 들먹이면서 ‘중국을 지지하지 않으면 큰 해를 입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처럼 비친 탓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불똥이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친미 국가에도 튄 꼴이다.
18일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대사는 14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중국-필리핀 관계를 위한 포럼’에 참석해 문제의 언급을 내놨다. 황 대사가 문제 삼은 건 올해 2월 필리핀 정부가 미국과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군기지 4곳 사용권을 부여한 사실이다. 그는 이를 거론하며 “해당 발표가 중국인 사이에서 광범위하고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황 대사는 이어 “대만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의 내정”이라며 엄포를 놨다. 필리핀 정부가 대만에서 일하고 있는 자국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대만해협 인근 군사기지에 대한 미군의 접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번 포럼은 친중 성향 필리핀 단체와 중국 대사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행사다. 양국 간 이해 증진 및 인적 교류 활성화가 목적이다. 우호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되레 상대국 국민을 인질로 삼아 ‘미국과의 관계를 재고하라’는 압박성 발언을 한 셈이다.
필리핀은 발칵 뒤집혔다. 야당인 시민행동당은 “‘대사’가 아닌 ‘인질범’의 발언”이라며 “필리핀은 다른 국가와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독립된 주권 국가”라고 일갈했다. 여야 상원의원들도 일제히 황 대사를 즉각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외국인노동자가족연합은 “(중국과 대만의) 무력 충돌이 시작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종차별적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리핀 정부도 ‘외교적 결례’를 비판하고 나섰다. 국가안보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는 섬(대만)에 살고 있는 필리핀인의 안전과 안녕”이라며 “우리를 겁주고 위협하기 위해 국민을 이용하려는 손님(중국)의 발언을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그간 침묵을 지켰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나흘 만인 이날 외교부에 “대만에 있는 필리핀 근로자를 돌보라”고 지시했다. 황 대사 언급을 ‘실언’이 아니라 ‘실존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주필리핀 중국대사관은 “황 대사 발언이 잘못 해석됐고, (필리핀 언론이) 그의 말 일부를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필리핀 주요 매체들이 공개한 대사 발언 전문에는 문제가 된 언급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어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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