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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공격 본능 살아나는 KF-21, 국산 전투기 '베스트셀러'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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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공격 본능 살아나는 KF-21, 국산 전투기 '베스트셀러' 노린다

입력
2023.04.17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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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 KF-21 생산기지에 가다

지난해 7월 19일 경남 사천시 공군제3훈련비행단에서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가 역사적인 첫 비행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지난해 7월 19일 경남 사천시 공군제3훈련비행단에서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가 역사적인 첫 비행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시원스레 뻗은 활주로가 전면에 펼쳐졌다. 왼손으로 엔진 출력을 조절하는 스로틀을 밀고 속도를 높이며 달리다 오른손에 쥔 조종간을 가볍게 당겼다. 순식간에 박차고 날아오르면서 푸른 창공이 달려들듯 시야를 꽉 채웠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는 어느새 고도 1만2,800ft(피트·약 3,900m)가 찍혔다.

비행기 자세를 바로잡고 수평비행으로 전환했다. 그제야 멀리 진주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조종간을 계속 당기자 360도로 뱅글뱅글 돌며 고난도 기동을 선보였다. 가벼운 멀미가 스쳤다.

다른 버튼을 누르자 착륙 모드로 바뀌었다. 활주로를 향해 계기가 지시하는 대로 기수를 천천히 낮추며 중심선에 맞춰 기체를 정렬했다. 오른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기체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지상과의 조우를 준비했다.

간신히 중심선을 맞추고 스로틀을 줄였다. 랜딩기어가 땅에 닿았다. 다시 스로틀을 0으로 낮추고 두 발로 러더 페달을 깊이 밟았다. 비행기는 활주로 끝에 멈춰 섰다. 손이 저리고 머리에서 땀이 흘렀다. "잘하시네요." 옆에서 지켜보며 거들던 강효석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석연구원의 격려를 듣고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1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 우주동에 설치된 KF-21 시뮬레이터에 기자가 탑승한 가운데 강효석 KAI 수석연구원이 시뮬레이터를 설명하고 있다. KAI 제공

1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 우주동에 설치된 KF-21 시뮬레이터에 기자가 탑승한 가운데 강효석 KAI 수석연구원이 시뮬레이터를 설명하고 있다. KAI 제공


KF-21 그대로 재현한 시뮬레이터 “북한 침투 훈련도 가능”

13일 찾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우주센터. 2층 높이의 구형 돔 안에 KF-21 조종석을 고스란히 옮겨 놨다. 기자가 체험한 장비의 이름은 조종석절차훈련장치(CPT). 시뮬레이터는 좌우 210도, 상하 170도까지 펼쳐진 화면에 주·야간 비행을 비롯해 우천과 강설 등 기상악화 상황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 개발 중인 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의 성능에 맞춰 조종사 기량을 높이면서 돌발상황에도 안전하게 대비하기 위해서다.

특히 가상 무장을 발사하거나 가상 적기의 출현을 포함해 전투기가 실전에서 맞닥뜨릴 만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다. KAI 관계자는 "북한의 지형은 물론, 우리 전투기를 노릴 북한의 지대공미사일 정보까지 망라해 유사시 침투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격납고 앞 주기장으로 향했다. 오전 시험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KF-21 시제 1호기가 위용을 뽐냈다. KF-21은 일취월장하며 온전한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9일 첫 비행 이후 △올해 1월 17일 첫 초음속 비행 △2월 20일 복좌식 시제 4호기 비행에 성공했다. △지난달 4일에는 국내 개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탑재 시제기가 하늘을 날았고 △9일에는 야간비행 임무를 완수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시제 2호기가 중거리공대공미사일 미티어 시험탄 무장 분리에, 시제 3호기는 공중 기총발사에 성공했다. △4일에는 단거리공대공미사일 AIM-2000 무장 분리도 달성했다. 이처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항공기 안정성을 검증하면서 전투기의 본연 임무인 공격 성능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KF-21 제원과 개발 연혁. 그래픽=김대훈 기자

KF-21 제원과 개발 연혁. 그래픽=김대훈 기자


조립동 가득 KF-21ㆍFA-50… 조립 라인에는 활기가

조립동을 찾았다. 축구장 3배에 달하는 면적 2만1,600㎡ 공간에는 KF-21 시제기 외에 폴란드 등으로 수출할 경공격기 FA-50이 가득 차 있었다. FA-50의 성공적인 개발과 수출에 이어 KF-21이 바통을 이어받는 모양새다.

KAI는 지난해 9월 폴란드 군비청과 FA-50 48대 수출계약을 맺었다. 올 2월에는 말레이시아와 최대 36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조립동에는 최종 생산라인 두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KF-21의 경우 5대, FA-50은 17대가량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이날 KF-21 라인에는 시제 2호기의 추가 장비 장착 작업이 한창이었다.

조현길 KAI 고정익최종조립기술팀장은 “요새 손님 오는 것이 불편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KF-21과 수출용 FA-50 때문에 정신없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FA-50이 약 5년간 저율생산 체제였는데 생산 속도를 올렸다”며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한편에서는 폴란드 정비사들이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KAI 정비사에게 선진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었다.

13일 강원주 한국항공우주산업 책임연구원이 KF-21 동체 하부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 장착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KAI 제공

13일 강원주 한국항공우주산업 책임연구원이 KF-21 동체 하부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 장착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KAI 제공


국산 항공기 앞세워 우리 공군 시스템 해외로 전수

KF-21은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다. 전투기 본연의 임무는 유사시 적기를 격추하고 적의 시설물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미티어를 비롯한 미사일과 폭탄 등 각종 무장을 탑재하고 작전을 펼친다.

KF-21은 양쪽 날개에 무장을 각각 3개씩, 동체 하부에는 4개를 달 수 있다. 이렇게 최대 10개의 무장을 달고 이륙한다. 동체에는 기관포도 갖췄다. 강원주 KAI 고정익임무체계팀 책임연구원은 “무장 분리는 시제 2호기, 무장 발사는 시제 3호기로 시험하며 개발 과정에서 역할이 나눠져 있다”고 설명했다.

마침 이날 말레이시아 대표단도 KAI를 찾았다. 앞서 개발한 FA-50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FA-50 수출은 KF-21에도 호재라는 것이 KAI의 설명이다. 한국 군용기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을수록 △훈련기 KT-1 △다목적 경공격기 FA-50 △4.5세대 전투기 KF-21로 이어지는 전체 라인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공군이 오랜 훈련을 통해 입증한 전투기의 성능을 넘어 영공방어 시스템까지 해외에 전수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2월 20일 KF-21 복좌형 시제 4호기 시험비행을 앞두고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들이 격납고에서 기체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2월 20일 KF-21 복좌형 시제 4호기 시험비행을 앞두고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들이 격납고에서 기체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수출 활성화 위해… 납기 당기고 나토 뚫는다

KAI는 폴란드에 수출하는 FA-50 48대 가운데 12대를 올해 8월부터 납품할 예정이다. 유럽 진출은 국내 항공기술력이 잠재적 고객인 각국의 수요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다는 상징성이 담겼다. FA-50은 미 공군과 해군이 추진하는 훈련기 사업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동유럽 폴란드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 교두보를 확보한다면 FA-50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로 판로를 확대할 수 있다. 사실상 전 세계에 우리 항공기의 깃발을 꽂는 셈이다.

폴란드는 KF-21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FA-50 구매를 위해 KAI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폴란드 대표단은 KF-21을 보고 "저 항공기는 무엇이냐"며 "폴란드 국기가 거꾸로 달려 있다"는 농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KF-21 동체에는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 국기가 새겨져 있는데, 인니 국기를 뒤집으면 폴란드 국기와 똑같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공장 설비도 늘리고 있다. 신동학 KAI 고정익사업 수출제안실장은 “KF-21 양산계약이 체결된다면 폴란드와 말레이시아로 수출할 FA-50 추가 생산라인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천=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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