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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없는 코끼리'가 던진 질문…광주비엔날레는 물처럼 부드럽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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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없는 코끼리'가 던진 질문…광주비엔날레는 물처럼 부드럽게 답했다

입력
2023.04.1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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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광주비엔날레 7월 9일까지 대장정
아프리카 대자연 생명력으로 관객 유도
정치적 메시지보다 '흩어진 사람들' 주목해

지난 5일 프레스오픈으로 열린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 '바침'이 전시돼 있다. 뉴시스

지난 5일 프레스오픈으로 열린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 '바침'이 전시돼 있다. 뉴시스


아프리카 대자연의 생명력을 광주로 옮겨온 것일까.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의 제1전시실 전체가 거대한 숲으로 변신했다. 좁은 입구를 지나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진짜 흙과 잔디가 깔려 있는 어둡고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대지 위에는 양털 밧줄들이 나무들처럼 허공에 매달렸다. 땅바닥 곳곳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볕을 형상화한 조명이 떨어진다. 이 모든 풍경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이어주는 영적 치유자이자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가인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 ‘바침’(2023년)이다. 그는 인공적 공간을 자연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관람객들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관람객들은 ‘바침’을 거닐면서 광주비엔날레로 여행을 떠난다. 식민주의부터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 국제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지구를 변화시킨 사회 현상들과 부작용들, 그리고 그 해법들을 예술로 풀어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7일부터 94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둔 5일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오픈에서 언론, 문화 관계자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둔 5일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오픈에서 언론, 문화 관계자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전시

올해로 28년째를 맞는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중심으로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예술공간 집 등에서 열린다. 본 전시에 참여한 작가만 79명(단체 포함)에 이른다. 신작만 40여 점이다. 본 전시와 함께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에 참여한 국가도 2개(2021년)에서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스위스, 우크라이나 등 9개국으로 늘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빌려온 것이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이자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를 총괄한 이숙경 예술감독은 “물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방식을 통해서 어딘가에 스며들고 그리고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약해 보이지만 강한 힘”이라면서 “주제 자체가 모든 작품에서 하나하나 드러난다기보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모이는 방법, 세계를 보고 예술의 어떤 힘을 생각해 보는 태도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둔 5일 광주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엄정순 작품 '코 없는 코끼리'가 소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둔 5일 광주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엄정순 작품 '코 없는 코끼리'가 소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풍부

실제로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번 전시에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은 이전 비엔날레보다 적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산업화나 국제화 과정에서 소외된 선주민들이나 국경을 뛰어넘어 살아가는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부각됐다. 예컨대 제2전시실 한편에는 마당극을 준비하는 놀이패와 할머니를 그린 초상화들이 나타난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 알리자 니센바움이 5·18 민주화운동 이후 2년 뒤 설립된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작품이다. 그는 간호사나 지하철 노동자 등을 그려왔다. 역사에 이름이 남은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재조명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2023년)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과 촉각, 후각으로 코끼리를 느낀 이후 표현한 조형물을 재해석해 실제 코끼리 크기로 대형화한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작품의 부드러운 표면을 만져보면서 ‘정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5일 전남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작가인 비비안 수터(Vivian Suter)의 연작 작품이 전시돼 있다. 뉴시스

5일 전남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작가인 비비안 수터(Vivian Suter)의 연작 작품이 전시돼 있다. 뉴시스


비엔날레의 위기를 넘어서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계적으로 많은 비엔날레가 생겼고 한국에도 10개 이상”이라면서 “어떻게 보면 위기에 있는 비엔날레의 존재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차별화에 성공했을까.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이 감독은 큐레이터로서의 철학을 “현재 보여지고 있는 현대미술의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매개”라고 소개하면서 “동시대 미술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無)맛이 가장 맛있는 맛”이라는 입장도 있다. 박재용 큐레이터는 “한 메시지만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갈수록 다양화하는 시대인 만큼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여지를 준 전시”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번 전시가 큰 주제로 다양한 주제를 묶어냈지만 하나의 큰 이야기를 구성하기에는 강도가 약했다는 반응도 있다. 이웅배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는 “비엔날레는 사람들이 상상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번 전시는 작품들을 잘 전시했지만 연결성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광주비엔날레는 7월 9일까지 열린다.


지난 5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과테말라 출신 작가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년)가 전시돼 있다. 돌에 채소와 과일을 올려놓은 이 작품은 작가가 조상들에게 바치는 제의이기도 하다. 뉴시스

지난 5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과테말라 출신 작가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년)가 전시돼 있다. 돌에 채소와 과일을 올려놓은 이 작품은 작가가 조상들에게 바치는 제의이기도 하다. 뉴시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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