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르도 즐겨 먹고 대통령도 선물한 대추야자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교와도 깊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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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성경에 따르면 부활 한 주 전에 예수는 예루살렘성으로 나귀를 타고 들어갔다. 군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 입성을 환영했다. 기원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 장엄한 행렬 예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종려(성지) 주일이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이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런데 종려나무는 정확하게 어떤 나무일까? '국가표준식물목록' 등 국내 도감류를 보면 종려나무라고 기록된 식물 이름이 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원산의 야자나무과 식물이다.
우리말로 옮겨 적은 성경의 종려나무는 어떤 특정 한 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야자나무과에 속하는 여러 종을 통칭해서 종려나무라고 번역한 것으로 본다. 그러면 성경이 가리키는 진짜 종려나무는 뭘까?
세계적인 부자이자 맨시티 구단주인 만수르가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고 소개하고 최근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귀국 후 소속 정당에 선물하기도 했다는, 두바이 여행객 기념품 꾸러미에 꼭 하나쯤 담겨 있는 그 쫀득쫀득하고 말랑말랑한 건과일 대추야자. 그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성경 속 종려나무다. 대추야자나무는 국내 종려나무와 같은 혈통의 식물이고 비슷한 이미지다.
“우와, 파인애플이 나무에 열렸어!” 몇 해 전 태어나 처음으로 다섯 살에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된 조카가 제주공항 게이트가 열리자 놀란 듯 외쳤다. 제주임을 가장 실감 나게 만드는 건 역시 ‘야자수’다. 국내에 도입되어 재배되는 야자나무과 식물을 아울러 야자수라고 부르지만 크게는 세 종류다. 중국이 고향인 종려나무, 미국 남서부 지방이 고향인 워싱턴야자, 아프리카 카나리섬이 고향인 카나리아야자. 이 중 가장 널리 심어 기르는 건 종려나무다. 수천 년 전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다양한 품종이 개발됐다. 키가 너무 커 픽픽 쓰러지는 종려나무에 비해 비교적 작게 자라는 당종려와 왜종려 같은 품종을 우리나라 제주와 남부지방에 주로 식재해서 키운다. 요즘은 강릉과 대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성경의 종려나무가 대추야자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건 2008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한 편을 통해서다. 이스라엘의 고대 유적지 마사다에서 발굴한 대략 2,000년 전의 대추야자 씨앗 몇 개를 심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적처럼 싹을 틔웠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연구자들은 발아한 나무에 ‘므두셀라’라는 애칭을 붙였다. 구약성서에서 969년을 살았다고 기록돼 있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리고 2020년, 그 후속 논문이 ‘사이언스어드밴스’를 통해 나왔다. 총 6개의 씨앗이 추가로 싹을 틔워 연구진들은 아담, 요나와 같은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각 개체에 붙여 연구를 이어가게 됐다고 했다. 논문은 그 씨앗들이 최대 2,400년 전에 묻힌 거라고 추정했고 고대의 것이 지금의 것보다 약 30% 더 크다고 밝혔다. 현재 유대 광야에서 자라고 있는 대추야자와 유전자 분석까지 보태 지금의 크기로 작아진 이유도 추론했다. 관상용으로 더 널리 재배되면서 과거 열매로서 뛰어났던 특성이 점차 퇴화해 작아진 것 같다고 했다. 예수가 활동하던 무렵 최대 수출품이기도 했던 대추야자는 계속되는 전쟁과 가뭄으로 재배지가 축소됐고 더 나아가서는 십자군 전쟁 때문에 더 많은 재배지가 파괴됐을 거라 추정했다.
대추야자는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깊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수차례 등장하고 라마단 기간이 끝난 후에 무슬림이 가장 먼저 먹는 것으로 알려진 게 대추야자다.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는 대추야자 농사를 적극 장려하고 투자하며 홍보하는 국가 중 하나다. 대추야자와 관련된 연구만을 모아 UAE 대통령 권한으로 수여하는 '칼리파국제상'은 올해 15회째를 맞는다. 대추야자 분야에 공헌한 개인, 기관, 지역 농장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대추야자 사진공모전과 문학공모전도 해마다 연다. 대추야자는 사막에서도 자라는 강인한 식물로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오아시스를 활용한 관개농업의 대표작물이다.
국내에서는 종려주일에 대추야자의 나뭇가지를 흔들지 않는다. 근처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당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4월 초에 초록 잎을 달고 있는 (서양) 측백나무나 편백과 같은 상록성 나무를 쓸 것이다. 먼 이국땅 페루의 시골 마을에서는 이 무렵 싱그러운 잎을 달고 있는 옥수수 대를 잘라 들고 종려주일 예식에 참여한다는 것을 해외 선교 중인 한 신부님의 편지를 읽고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종려나무가 정확하게 무슨 나무인지 따져보던 일을 하얗게 잊은 채, 그날의 축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핀 모든 초록들이 종려나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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