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북한 핵개발에 대응한 독자 핵무장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의 군사·외교 분야 전문가들도 언론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가운데 민간 싱크탱크 니어재단(3월 29일), 전문가 모임 한국핵자강전략포럼(4월 17일) 등의 주최로 공개 토론회가 속속 열렸다. 정치권에서도 오세훈 서울시장,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등 여권 인사들이 자체 핵 보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핵무장론은 연초 "대한민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윤 대통령의 국방부 업무보고 발언으로 한 차례 불붙었다가 기존 확장억제 정책(일명 핵우산)을 강조하는 한미 간 입장 조율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대응 강화를 최우선 의제로 다룰 예정인 데다가, 북한의 연쇄 도발이 급기야 전술핵탄두 실물 공개와 핵공중폭발 시험에까지 이르면서 우리도 맞대응 수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결과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4%가 독자 핵무장에 찬동(반대는 33%)하는 등 여론 동향도 핵무장론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지난달 니어재단 토론회에선 핵무장 불가론과 핵공유 절충론, 이달 핵자강포럼 토론회에선 핵무장 불가피론이 상반되게 제기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전문가 그룹 의견은 어느 한쪽으로 쏠렸다고 보기 어렵다. 핵무장 추진의 현실적 한계나 국익을 되레 훼손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종섭 국방장관도 지난 6일 국회에서 "국민 희망사항과 실제 정책 추진은 달리 봐야 한다"며 정부의 핵무장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북한의 핵무장 폭주로 우리도 대응 수위를 획기적으로 높일 명분은 충분히 갖춘 셈이고, 그 선택지에 자체 핵무장이 포함되는 걸 제약하던 심리적 허들도 낮아지는 추세다. 그런 만큼 향후 논의는 핵무장의 '당위론'을 넘어 그 효과와 비용을 따져보는 '현실론' 차원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핵무장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전문가 견해, 기존 핵보유국의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분석해봤다.
① 미국과 국제사회 설득할 수 있나
미국은 시종일관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해왔다. 윤 대통령의 업무보고 발언에도 관계당국들이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한국 정부가 핵무기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는 "미국 정책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한미 군사동맹 관계, 미국의 위상을 감안했을 때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의 반대는 최대 난관이 될 전망이다.
미국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 안보 환경이 변했고 미국의 핵정책도 불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핵자강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17일 토론회에서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해도 한미동맹이 약화할 리 없고 오히려 미국이 국방비 절감, 대북·대중 핵억지력 공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맹국 핵무장에 상대적으로 열린 자세를 가진 미 공화당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현 민주당 정부를 상대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핵추진잠수함 기술 이전 등 예비단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자는 제언도 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 핵무장을 허용하면 북한 제재도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며 미국의 용인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기로에 서게 되는 점도 부담이다. 190여 개국이 가입된 NPT는 5개 공식 핵보유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이외 조약국엔 원자력의 무기 전용 금지와 사찰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NPT에 가입한 채로 핵무기를 개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이란과 리비아는 NPT 탈퇴 없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가지려다가 수포로 돌아갔다. 비공식 핵보유 3개국(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가입하지 않았고 북한도 중도 탈퇴했다.
NPT상에 '조약상 문제와 관련한 비상상태가 자국의 핵심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엔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10조 1항)는 규정이 있긴 하나 형식적 조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이 이 규정을 탈퇴 근거로 들었지만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비껴갈 수 없었다. 일부에선 NPT 탈퇴 대신 '이행 정지' 형식을 취해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보면 다자조약 당사국이 조약을 위반하면 관계국이 이를 조약 이행을 정지하는 사유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를 원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② 고강도 제재, 국제적 고립 우려 없나
독자 핵무장은 NPT 체제 아래 새로운 핵보유국 출현을 막고(비확산) 기존 핵무기는 줄이자(핵군축)는 국제적 약속을 깨는 행위여서 제재와 고립이 불가피하다. 핵무기 개발로 고강도 제재에 직면한 건 북한만이 아니다. 앙숙지간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1998년 5월 나란히 핵실험을 하자 미국은 당시 주요 8개국(G8)과 함께 △차관 중단 △식량 제외 경제원조 중단 △군사 전용 우려 첨단제품 수출 금지 등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핵실험 국가에 연방정부 예산 지원을 금지하는 미국의 글렌수정안이 처음 적용된 사례였다. 파키스탄 부토 정부는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대패하고 3년 뒤 인도가 1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핵개발을 추진하던 중 1977년 군부 쿠데타로 전복됐다. 쿠데타 배후엔 미국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는 모면할 수 있을지라도 각국의 독자 제재를 피하긴 힘들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와의 대담에서 "한국이 NPT를 위반할 경우 원자력공급국 그룹이 자동적으로 핵물질 공급을 중단하면서 전력의 30%가 끊길 것"이라며 "미국 또한 글렌수정안이 자동 발동돼 한국에 대한 모든 경제적·군사적 지원이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드 보복' 때 체감했듯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제재 또한 우리 경제에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한편에선 제재가 발동해도 강도나 기간이 제한적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배터리 원자력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보유한 영향력을 제재 수위를 낮추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정성장 실장은 "미국과 서방이 자국 국익에 반하는 강력한 단독 제재를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찰스 퍼거슨 미 과학자협회 회장도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타진한 2015년 보고서에서 한국이 핵개발을 하더라도 한국과 원자력 분야에서 합작 중인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은 제재를 세게 하지 못할 거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국제 제재의 주도권을 쥔 미국을 상대로 자체 핵무장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면 제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실제 핵개발국 제재 전례를 봐도 결정적 변수는 미국의 이해관계였다. 인도의 경우 1998년 핵실험에 따른 제재가 불과 한 달 반 만에 풀렸는데, 여기엔 냉전 시대 소련과 가까웠던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중이 작용했다. 파키스탄 제재가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 완전 해제된 것도 미국이 파키스탄을 대테러전쟁 기지로 점찍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아예 1969년 미국과 정상 간 비밀조약을 맺고 미국의 용인하에 핵개발을 추진해 제재를 피해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과 이란은 미국에 있어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고강도의 장기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③ 정말 6개월이면 핵무장 가능한가
한국은 NPT 가입(1975),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 한미 원자력협정(2015년 개정)으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겹겹이 차단하고 있다. 다만 원자력 분야 기술 수준에 비춰볼 때 핵물질 확보에 필요한 플루토늄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기폭장치, 유도장치 기술도 상당하다는 관측이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이 결심만 하면 수개월 안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가 대표적 인사다. 국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6개월이면 핵폭탄 1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핵자강포럼 토론회에서 "국내에서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은 100톤 이상으로 최소 8,000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며 "핵실험은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가상실험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사일과 발사차량·잠수함 등 핵무기 운반 체계가 잘 갖춰진 점도 독자 핵무장에 유리한 조건이다.
핵무장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거란 반론도 많다. 장동희 전 주제네바 군축대사는 언론 기고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재처리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를 갖추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농축 우라늄의 경우)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이 가능해졌지만 미국 측 동의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또 다른 기술적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핵탄두 폭발을 유도하는 장치인 '폭발렌즈'는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고 미사일 장착을 위해 소형화하는 건 더 어렵다"며 "시뮬레이션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서 여러 차례 폭발 실험을 반복해야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견제까지 받는다면 핵무장 일정은 더 지연되기 쉽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VOA 대담에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15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더 빨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1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다른 국가들이 반대하면 훨씬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④ 남북 간 '공포의 균형' 과연 이뤄질까
한국 독자 핵무장론의 목표는 한반도에 '공포의 균형'을 조성하는 것이다. 핵무기의 위력을 감안할 때 선제공격을 하더라도 보복을 받으면 공멸하는 '상호확증파괴'로 귀결되므로 핵보유국끼리는 전면전을 피하게 된다는 역설적 평화론이다.
남북 간에도 공포의 균형이 이뤄질지 가늠하려 할 때 흔히 소환되는 것이 인도-파키스탄 사례다. 오랜 갈등의 역사가 있는 인접국으로 경쟁적 핵무장을 벌였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1947년 분할 독립한 뒤 1998년 나란히 핵실험을 하고 핵보유국 선언을 하기 전까지 두 나라는 영유권 분쟁지인 카슈미르 일대에서 세 차례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핵무장 이후에도 양국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핵보유 선언 이듬해 카슈미르 카길 지역에서 네 번째 전쟁을 치렀다. 특히 2019년엔 파키스탄이 후원하는 단체가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테러를 일으키자 인도가 사상 처음 파키스탄 영토(발라콧)를 공습했다. 파키스탄의 핵독트린(핵무력 사용 방침)에 따르면 파키스탄이 인도에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확전 없이 마무리됐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라콧 공습에서 주목할 점은 인도가 핵전쟁 위험을 감수하고 의도적으로 확전을 불사했다는 점"이라며 "양국이 이런 경험을 통해 '상대방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도 보복당할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다'는 잘못된 교훈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핵무장 이전 세 차례 전쟁과 같은 양국 간 전면전이 더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만큼 공포의 균형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핵무력에서 우위를 점한 북한이 남한의 핵무장을 막고자 '예방적 자위권'을 빙자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유엔헌장 51조는 자위권 행사 요건을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안보리가 안전유지 조치를 취할 때까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핵무기·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가 출현한 상황에선 공격 예방을 위한 자위권 발동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이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 2007년 시리아 알키바르 원자로를 폭격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핵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자위권 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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