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예고된 악재지만
尹정부 대일정책 여론 지지 악화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을 흐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고수한 일본 교과서가 한일관계를 다시 짓누르고 있다. 예고된 악재인 만큼 돌발변수는 아니지만, 한일 정상회담의 순풍이 자칫 삭풍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정부는 “교과서를 통한 부당한 역사와 영토 주장을 멈추라”며 일본을 향해 강한 어조로 맞대응하면서도 "대일외교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으며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149종의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 검정 및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인 강제노역 등과 관련해 '징병→참가', '끌려왔다→동원됐다'고 바꿔 강제성을 희석시켰다.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못박았다.
외교부는 즉시 대변인 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무리한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도 같은 취지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대리를 초치해 엄중히 항의했다. 주한일본대사가 일시 귀국한 상태라 총괄공사를 대사대리 자격으로 불렀다.
양국이 정상회담으로 관계개선의 물꼬를 튼 지 불과 12일 만에 얼굴을 붉힌 셈이다. 다만 외교부는 이번 교과서 문제가 “현 정부의 대일외교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일본의 발표는 지난해 4월 검정 신청이 완료된 교과서에 관한 것인 만큼 한일 정상회담과 연결시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처럼 외견상 충격파는 강하지만,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은 매년 되풀이되는 '캘린더 변수'로 통한다. 일본은 교과서 외에 △2월 다케시마의 날 △4월 외교청서 △7월 방위백서 △8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을 자극해왔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교과서 검정 발표에 대해 “우리가 일희일비할 사항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응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한일 외교차관 전략대화, 국장급 안보정책협의회 등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들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예년과 상황이 달라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강제동원 피해를 배상해야 할 일본 전범기업의 채무를 떠안았고 구상권마저 포기하면서 대일 '저자세 외교'에 대한 지적이 무성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밀어붙였다가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우리 측 결단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를 마무리한 것과 달리,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만 해제했을 뿐 한국을 아직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에 다시 올리지 않고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교과서 문제가 당장 양국관계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일본을 향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이 누적될 것"이라며 "현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노력과 대일정책이 지지를 받지 못해 동력을 잃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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